<323>인정사정 볼 것 없다 (28)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매듭만 풀면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그래서 알렉산더 대왕은 매듭을 단칼에 베어냈단 말이지?’
요즘 유행하는 노래 가락부터 한 곡 뽑아내기 위해 목청을 고르던 유민 회장은 잠시 골똘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지금 이 순간, 방송사 상무만 잘 꼬드기면 천하를 얻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들 녀석은 국민적 스타가 되고 본인은 빼앗긴 3,000억 원을 손쉽게 되찾을 수도 있을 터였다. 진리는 행동함으로써 이루어지는 법, 이제부터 그는 방송사 상무를 꼬드기기 위해 최선을 다 할 요량이었다. 그는 이미 알렉산더가 된 기분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BC334년, 동쪽 땅을 정벌하던 도중에 소아시아 프르브기아의 옛 수도 고르디온에 도착했다. 이 도시에 있는 신전기둥에는 커다란 수레 하나가 밧줄로 묶여 있었다. 그러나 그 수레는 마술에 걸린 것처럼 단단한 매듭이 지어져 있었다. 그 매듭을 푸는 사람은 묶여있던 수레를 타고 전 세계를 정복하는 대왕이 된다는 예언이 있었는데… 여태껏 많은 영웅호걸이 그 매듭을 풀어보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만 거듭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알렉산더 대왕은 허리춤에서 큰 칼을 뽑아들고 그 매듭을 단칼에 쳐서 끊어버렸다는 이야기를 유민 회장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 얘들아! 여기…”
유민 회장은 양복 주머니에 분산시켜 넣어두었던 만 원짜리 지폐뭉치를 차례로 꺼내어 테이블의 술병 옆에 쌓아가기 시작했다. 남자 양복엔 웬 주머니가 그리 많은지… 겉주머니, 안주머니 도합 4개의 주머니에서 꺼낸 지폐뭉치가 술병보다도 높이 쌓이고야 말았다. 모두 만 원짜리 지폐였으니 대략 800만원은 넘는 것 같았다.
“현찰을 탑처럼 쌓아놓았거든? 누구든 신나게 분위기 띄워 노는 사람은 이 돈을 열 장씩 가져가도록! 단, 내 옆에 계신 상무님께서 오케이 사인을 보낸 경우에 한해서 말이야. 상무님께서 심사위원이란 뜻이지. 상무님을 기쁘게 해드리기만 하면 이 돈은 모두 너희들 거라고. 알겠니?” 알렉산더 대왕처럼 호기를 부려보자는 심사였다. 유민 회장이 벌인 이벤트로 인해 이미 술집 분위기는 구름 위로 뜬 상태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마담이 이 절호의 찬스를 놓칠 까닭이 있나. 마담은 쪼르르 밖으로 달려 나가더니 늘씬한 모델 급 아가씨들을 무려 다섯 명이나 추가로 들여보냈다. 모델 급 아가씨 일곱에 일류 밴드마스터 하나, 유민 회장의 배짱에 눈이 동그래진 방송사 상무는 벌어진 입을 다물 재간이 없었다.
“유 회장님, 소문처럼 정말 화끈하십니다, 그려.”
“상무님을 즐겁게 해드리는 일이라면 무언들 못하겠습니까?”
“그래도 너무 과하게 지출을 하시는 것 같아서…”
“이 정도야 새 발의 피예요. 제 아들 녀석을 스타로 만들어 주실 분인데… 이번 일만 잘 성사되면 제 금고를 활짝 열어놓겠습니다. 상무님을 위한 일이라면 까짓 금고, 바닥이 드러나도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참으로 멋진 대사였다. 가로 세로 몇 미터짜리 금고인지는 몰라도 그 금고를 활짝 열어놓겠다는 유민 회장의 말은 방송사 상무의 혼을 빼놓기에 너무도 충분했다.
“그럼 어디 멋지게 놀아볼까요?”
“까짓 거, 놀아보지요 뭐.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란 말도 있잖습니까?”
둘 사이에 오간 사업상의 대화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방송사 상무의 오케이 사인이 나가기만 하면 지폐 열 장씩 가져갈 수 있는 골든타임이 시작된 까닭이었다. 아가씨 한 명이 노래하면 세 명이 춤추고, 나머지 두 명은 방송사 상무의 옆구리에 들러붙어 술을 권하며 뼈라도 녹여낼 기세였다.
“좋아, 좋아. 너 이름이 뭐냐? 뭐라고? 혜미? 알았다. 내 오늘 너에게 특명을 내리지. 넌 오늘 밤 기필코 저 양반 바지를 벗겨야 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내일 점심 때 저 양반 팬티를 가지고 내 사무실로 오도록 해라. 알겠니?”
유민 회장은 그중 미모가 뛰어난 아가씨에게 다가가서 귓속말을 속삭였다. 이를테면 풀린 매듭이 혹시라도 다시 꼬이는 일이 없도록 뒷단속까지 철저히 해두자는 속셈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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