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 낭만주의자들은 여성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애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간음과 혼외정사를 즐기라고 권장했다. ‘그리제트’, 즉 ‘손쉬운 싸구려 여성들’의 시대였던 것이다.
앙리 모니에(Henri Monnier)는 1825년 훌륭한 부르주아를 지칭하는 ‘무슈 프뤼돔’을 창안해낸다.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여성으로 그리제트를 고안해냈다. 그리제트는 생활은 어려운데 매력적인 젊은 여성들이다.
남루한 잿빛 작업복 치마란 뜻의 그리제트가 말해주듯 그녀들의 직업은 주로 장갑 제조공, 장식끈 제조공, 염색공, 타피스리 직조공,수예 재료 상인, 군소장식품 판매인, 조끼 재단사, 내의류 제조공, 조화(造花) 제조공 등이었다.
하루에 겨우 30수(프랑스의 옛 화폐 단위로 20수가 1프랑)를 벌기 위해 자신의 젊음을 바쳤지만, 심각하게 빈곤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다행히 그녀들에게는 온갖 종류의 빚을 갚아주는 친구가 있다. 나는 그녀들의 빚을 청산해주는 남자를 ‘이성적인 친구’라 지칭하려고 한다.
그리제트는 중후함과 매너 때문에 이 ‘이성적인 친구’를 존경한다. 그들의 나이는 평균 50세. 질투심이 없고 대체로 야채 상인이거나 혹은 이불을 파는 도매상 직업을 갖고 있다. 그리제트들의 후원자로 많은 돈을 지불하는 또 다른 부류는 ‘일요일 친구’라고 부르는 젊은이들이다. 그리제트는 일주일에 한 번만 그와 사랑을 나눈다.
때때로 월요일 아침까지 계속되는 ‘일요일 친구’의 역할은 ‘그리제트에게서 승인을 받다’라는 표현 속에 집약돼 있다.”(에른스트 데프레, 1832년의 글) 그리제트를 ‘발명’한 앙리 모니에는 명백한 현실에 형태를 부여했을 따름이다.
당시 무수한 시골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찾아 파리로 상경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어두컴컴한 고미다락방에서 수행하는 힘든 작업뿐이었다. 하지만 그리제트들에게는 꿈이 있었다. 그녀들이 이륜마차를 탄 남자들을 구경하기 위해 대로를 따라 산책할 때면 풍채 좋은 남자가 종종 그들을 유혹했다.
오노레 도미에, 폴 가바르니, 장-자크 그랑빌, 그리고 특히 앙리 모니에 등 당시의 캐리커처 화가들은 돈 없고 더없이 순진무구하며, 부드러운 내용의 편지 한 통에도 자신의 몸을 맡기는 이 젊은 여성들을 아주 좋아했다. 그녀들은 저항하는 법이 거의 없었다. 그녀들과 나눈 사랑을 통해 앙리 모니에는 은밀한 내용의 그림들을 남기고 있다.
‘지옥에서의 그리제트’에는 늘 멋진 모자를 쓴 채, 애인들 무릎에 앉아 황홀감에 도취돼 몸을 누인 여성들이 있다. 그림 속 여성들은 미소 지으며 자신들의 옷을 들춰올리고, 서로 오럴섹스를 하며 아름다운 음경에 도취돼 있거나 탐욕스럽게 그것을 포옹하고 있다. 생동감이 넘쳐나는 일부 이미지들은 매료된 태도로 자발적으로 자신을 내맡기는 그리제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들은 자신을 정복하는 허리에 엉덩이를 밀착시키고 있고, 봉긋한 가슴은 흐트러진 옷 바깥으로 아무렇게나 드러나 있다. 앙리 모니에는 이런 놀이로부터 도발적인 즐거움을 끄집어낸다. 행복이 넘쳐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19세기 부르주아를 그려낸 천편일률적인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알렉상드르 뒤푸이는 열정적으로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낭만주의자들을 우울하고 케케묵은 도덕으로 무장한 젊은이들로 여기는 이 시대에 대한 선입견은 재검토돼야 합니다. 그들은 도발적이고 열정적이고 음탕하며, 계몽주의 시대의 해방적 가치를 생생하게 물려받은 존재들입니다.” 낭만주의자들이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았던 것일까?
1829년 발자크는 ‘결혼 생리학’이란 책을 가명으로 출간하면서 스캔들을 불러일으켰다. 책은 여성이 부부생활 조건을 개선시키고, 구태여 자기 남편을 속이지 않아도 될 개혁적인 내용을 담았는데, 발자크는 극단에 가까운 생각들을 책 속에서 전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결혼제도는 시효를 상실한 것이다.
결혼이 여성을 행복하게 해주지않는 한, 그녀들은 애인을 찾을 수 밖에 없다. 만약 남편이 그녀의 요구를 들어줄능력이 없다면 세 사람이 함께 사는 가정이 이상적일 수 있다. 간음은 오늘날 흔히 그로테스크한 측면만을 부각시킨다. 부르주아 방식의 코미디와 그로테스크한 잡보성 기사들로가득 찬 ‘삼류 신문들’은 부정한 부부관계에 대해 퇴행적이고 병리학적인 견해만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낭만주의자들은 1820년대에 ‘트로이의 목마’를 만들어냈다. 그들은 여성 해방을 위해 싸웠고, ‘관계를 유지할’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했던 조르주 상드는 1830년에 작가 쥘 상도의 정부가 됐다. 남편의 허락을 얻어 그녀는 가정을 떠나 파리 문단에서 발자크, 앙리 모니에 같은 문인들과 만난다.
1832년 그녀는 조르주 상드라는 남자 이름을 가명으로 사용하면서 ‘인디아나’란 작품을 발표한다. 책은 세 남자로부터 동시에 사랑받으며 그들로부터 쾌락을 얻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낭만주의자들은 서정주의로 고통받던 순수한 영혼들이 결코 아니었다. 앙리 모니에의 에로틱한 석판화가 그것을 유쾌하게 증명하고 있다. 앙리 모니에의 석판화 모음집 ‘지옥에서의 그리제트’는 아스타르테 출판사에 의해 출간됐다. 1000권만 찍어냈는데, 80페이지에 걸쳐 100여 개 그림이 수록돼 있다. 파리11구 아믈로 가 58번지에 소재한 ‘에로스의 눈물’ 서점에서 판매 중이다.
글=아녜스 지아르(佛칼럼니스트), 번역=이상빈(문학박사ㆍ불문학) 사진 = 작가이자 풍자화가인 앙리 모니에가 그린 그리제트의 자유분방한 모습들. 그가 펴낸 석판화모음집 ‘지옥에서의 그리제트’중에서 <아스타르테 출판사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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