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의 매춘부들은 어디 있을까?’ (Mais ou sont les putes d`antan ?)

매춘부를 지칭하던 예전의 표현 대부분은 지금 사용되지 않는다. 그냥 ‘창녀’라 부르면 된다. 요즘 쓰는 그런 류의 표현들은 옛날보다 훨씬 많을 수도 있지만, ‘돈으로 사는’ 것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아주 부정적이어서 사람들은 침묵을 고수한다.

현재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한 전시회가 이 여성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1940년대까지 파리 남성들은 관광 가이드들이 ‘꼭 들러봐야 할 곳’으로 분류한 고급 매음굴을 즐겁게 찾곤 했다. ‘샤바네’ ‘원투투’ ‘스핑크스’를 비롯한 장소들은 벨 에포크 시대와 광기의 시대에 파리에서 대단히 명성을 날렸던 매춘 장소들이다.

사치와 관능, 키치와 속물 근성이 뒤섞였던 이 명소들은 모든 욕망과 모든 기벽이 발휘되던 라이프스타일과 사랑을 보여주었다. ‘오 보뇌르 뒤 주르’ 갤러리는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이 음탕하고도 신비스러운 장소들을 산책하면서 지금은 사라져버린 세계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호사스러운 장식들은 이 집에서 일하던 여성들과 고객들을 인도에서 일본으로, 중국에서 베니스로 여행하게 해주었다. 또 전시회는 수집가들과 매춘 장소 애호가들에게 브라사이, 앙드레 주카, 아트제트, 가스통 파리, 두아노 등이 찍은 단 하나뿐인 사진 컬렉션을 찾아내고 구매하는 기쁨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전시회는 동물 체위 섹스로 유명했던 르픽 거리 30번지, 사도마조히즘 섹스로 유명했던 나바랭 거리 9번지의 유명한 매음굴들과 남창들 집의 내부 풍경을 보여준다. 창녀들을 등장시켜 에로틱한 장면을 재구성했던 타블로 비방의 사진들 옆에는 1932년에 고급 매춘부들을 대상으로 제작돼 이름을 날렸던 디아나-슬립 란제리 카탈로그가 놓여 있다.

또 알코브를 장식하기 위해 제작된 그림들 옆에는 기발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플로라’란 이름을 가진 원투투의 채찍 지팡이, 청동으로 제작한 1900년 매음굴의 문짝, 남자들을 위한 매음굴 노커, 호신용 단검, 정조대, ‘꿈’을 가두는 독특한 환등기, 채찍들, 가는 단장, 나무로 조각한 장식용 현판 등이 그것들이다.

“이 모든 사진, 데생, 그림 및 오브제는 매음굴에서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돈으로 사는 사랑의 해로운 장면들, 샴페인이 넘쳐흐르는 사회생활이 거기서 펼쳐지지요. 그 속에서 우아한 여자들이 서로 스쳐 지나가고 남자들은 분주히 왕래하며 여주인들은 춤을 춥니다.”

오 보뇌르 뒤 주르를 만들어낸 니콜 캉테(Nicole Cantet)는 자신이 수집한 에로틱 예술 컬렉션에 직접 등장한다. 카바레에서 무희로 일하다가 수집가로 변신한 그녀는 거의 30년 전부터 우리 선조들의 성생활을 담고 있는 기상천외의 물건을 수집하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자신의 수집품들을 공개하기 좋아한다.

그녀의 갤러리는 규방으로 개조되었는데, 사람들은 그 속에 들어가면서 마치 창녀의 아파트에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벽지와 그림에는 향수 냄새가 배어 있고, 제본한 육중한 카탈로그와 자질구레한 실내 장식품들로 채워진 가구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방문객들은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을 받는다. 다시 말해 꿈꾸게 만드는 것이다.

그와 상관없이 매춘부들은 늘 꿈꾸게 만드는 존재였다. 2002년에 레진 데포르주(Regine Desforge)는 일부 지역의 명칭이 그녀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린다고 언급했다.“사람들을 착각하게 만드는 마레(‘늪’이란 의미) 지구에는 부르주아 도덕이 팽배하기 전에 프티-뮈스크라는 이름을 가진 또 다른 아름다운 거리가 있었다. 14세기에 그곳은 매춘부들이 손님을 받던 작은 거리였다. 퓌티뮈즈란 이름이 그로부터 유래했다.”

명칭이 아름답지만 거기에 속아서는 안 된다. 잔인한 현실을 종종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매춘에 종사하던 여성들 절대 다수는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채 희생을 감내해야 했던 성노리개들이었다. 레진 데포르주는 “로마의 창녀들은 모자와 앞이 열린 토가를 착용했다. 그들의 옷은 수치심과 광기를 나타내는 노란색이었다”고 지적한다. 오페라와 책의 여주인공으로 화류계 여성들이 등장하면서 스타에 버금가는 위상을 지닌 19세기에조차 이들은 정액을 닦아내는 마포(麻布) 지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름다운 여성’이란 책을 쓴 저자이자 인류학자인 브뤼노 르모리(Bruno Remaury)는 “19세기가 도덕과 여성성의 완성을 가장 옹호한 시기였고, 매음굴에서 매춘에 대한 교육을 가장 많이 실시한 시기였다”고 주장한다. “여성성은 늘 모호하게 취급되었다. 숭고하고 완성되고 완전한 동시에 불건전하고 불안스러우며 저주스러운 것으로 간주된 것이다. 부유한 모든 남성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 정부를 거느릴 수 있었다. 따라서 그는 여성성을 상징하는 두 부류, 다시 말해 도덕적인 아내와 창녀를 동시에 보유할 수 있었다.”

전자에게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아이를 수태할 역할이, 후자에게는 인간을 정화시킬 역할이 부여됐다. “19세기는 유전에 대해 편협한 견해를 지니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깡패가 깡패 아이를 낳는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매춘은 쓸모가 있었다. 마치 하수구처럼 사생아와 광인 혈통을 흘려 보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매음굴의 창녀들은 그런 목적을 위해 봉사했다. 매음굴 폐쇄를 선포했던 마르트 로베르(Marthe Robert)는 어떤 지옥이 열릴지 알고 있었다. 창녀였다가 해방을 맞이하면서 파리 시 자문역으로 변신했던 그녀는 1945년에 매음굴 폐쇄와 관련된 법안을 제출했고, 이 법은 1946년 4월 9일 채택됐다.

예전의 그들이 쿠션들로 채워진 집에 유폐된 채 우리를 꿈꾸게 했다면, 오늘날 성 산업 종사자들은 마르트 리샤르법에 따라 거리나 인터넷으로 내몰려 있다. 그들의 생활조건은 여전히 취약하다. 고통을 경감시켜 준다는 명분으로 법은 그들을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들었을 따름이다. 반쯤 숨어든 매춘부들은 어둠 속에서 수치심을 안은 채, 거부당하거나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진보라 부른다.

매음굴에 관한 ‘여자들의 매음굴, 남자들의 매음굴. 1860-1946’ 전시회는 파리 소재 ‘오 보뇌르 뒤 주르(Au Bonheur du jour)’ 갤러리에서 2010년 1월 31일까지 열린다.

‘매음굴. 1860-1946’이란 책에는 400개의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니콜 카네(Nicole Canet) 출판사 간행.

(이미지는 오 보뇌르 뒤 주르 전시회 사진) 글=아녜스 지아르(佛칼럼니스트), 이상빈=(문학박사ㆍ불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