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윤현종기자] 동대문 시장이 총체적으로 망가지고 있다. 경제는 어렵고, 찾는 사람도 줄었다. 무엇보다 세계에서 유일한 동대문식 ‘(디자인부터 최종생산까지 한 지역에서 가능한)원스톱 공정’이 위기를 맞고 있다.
옷 디자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원단 값은 ‘원사파동’ 이후 정점을 찍은 뒤 내려갈 줄 모른다. 각자도생을 모색하는 원단상인은 동대문을 주무대로 장사하진 않는다. 디자이너는 치솟는 원단가격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싸고 잘 팔리는 기본아이템과 패턴만 고집한다. 옷을 공급받는 도매상은 올라가는 출고가로 손해를 감수해도 어쩔 수 없이 판다.
‘원료공급 - 디자인- 생산 - 판매’ 의 끈끈한 고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일까. 지난 18일부터 일주일 간 동대문 지역 곳곳을 돌며 ’동대문시스템’을 받치고 있는 원단상인, 디자이너, 생산관계자, 도ㆍ소매 상인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재만(가명ㆍ43) 씨는 동대문 종합시장에서 13년 째 원단장사를 하고 있다. 오랜 경력의 그도 최근 면류 등 일반원단에서 특수원단으로 취급품목을 바꿨다. 중국산에 종속된 일반원단 대신 한국산 위주의 특수원단을 수출하면서 겨우 숨통이 트였다.
박 씨는 “동대문 시스템이 돌아갔던 이유는 디자이너들이 필요로 하는 가공상태의 원단이 언제나 대기상태였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2010년 ‘원사파동(파키스탄 등 면화생산국들이 자국산 수출을 통제하면서 중국같은 대량생산기지의 면화값이 폭등)’ 을 거치면서 원단 출고가가 대폭 올랐고 리스크 관리비용 (재고부담을 위한 창고 임대료, 인건비 등)도 동반상승하면서 한 번 올라간 원단 값은 내려갈 줄을 몰랐다. 수지가 안 맞으니 공급이 준 것은 당연했다. 그는 “이제 절대 동대문만 보고 장사하지는 않는다”고 귀뜀했다. 원단공급상 대부분은 이제 동대문에 ‘올인’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원단 값이 올라감에 따라 디자이너들은 모험을 꺼리게 됐다. 동대문의 영광을 이끌었던 무명디자이너들은 이제 새로운 시도 대신 잘 팔리는 면T 등 기본아이템만 고집한다.
동대문에서 7년 째 여성복 디자인을 하고 있는 조은정(가명ㆍ27ㆍ여)씨가 그런 경우다. 그는 “주로 많이 찾고 돈 되는 ‘기본아이템(원형적 디자인의 남방, 셔츠, 바지 등)’ 이 우선” 이라고 말했다. 원단 가격이 오르다 보니 예전처럼 다양한 패턴과 디자인이 어려워졌다는 설명이다. 3-4년 전에 비해 시즌(S/S, F/W) 별로 새로 나오는 디자인 종류도 30% 이상 줄었다. 조 씨는 “싼 원단으로는 이미테이션만 가능하다” 고 한숨을 쉬었다.
원단 값이 오르고 디자이너들의 발주물량도 줄어드니 자동적으로 공장 쪽의 생산비도 올라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유일하게 원가를 낮춰줄 인건비는 내려갈 줄 모른다. 생산공장이 하나 둘 문을 닫는 건 당연지사다. 한국의 대규모 공장은 씨가 말랐고, 요새는 중국 인건비도 만만치 않다. 2년 간 중국에서 생산공장을 운영하다 손해를 보고 국내에서 도매상을 하고 있는 최성진(가명ㆍ39)씨는 “기술이 좋은 A급 미싱사들도 월 200만 원을 채 못 받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다음은 도매상 차례다.그들은 과거에 비해 공장에서 비싸게 들여오면서도 소매상이나 소비자들에겐 싸게 팔고 있다. 누존 건너편 ‘유어스’ 에서 여성복 도매상을 운영하는 신미진 씨 (가명ㆍ28ㆍ여)는 “과거에 비해 채산성이 나빠졌어도 비싸게 팔 수가 없다” 고 말했다. ‘고객들’ 이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신 씨는 인터넷과 TV 프로 탓도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곳 도매상이 많이 공개되고, 인터넷에 ‘옷 싸게 사는 법’ 등이 널리 퍼지면서 소매상을 가장한 일반손님들이 이곳을 찾아와 큰 봉지나 가방으로 한꺼번에 사가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고 하소연한다.
싸게 옷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기존의 고정고객이던 지역 소매상들도 문을 닫았다. 신 씨는 “새벽시장을 찾는 소매상들은 예전의 절반 수준 밖에 안 된다”고 털어놨다. 3분의 1이나 떨어진 매출은 회복될 기미가 없다. 그 틈을 비집고 인터넷쇼핑몰이 대거 시장에 들어왔다. 그들은 중국 등에 자체생산 파트너를 끼고 ‘동대문표’보다도 낮은 가격으로 승부한다. 그래도 그들은 마진이 남는다. 온라인은 오프라인과 달리 택배비에서 나마 몇 백원을 남기는 게 가능하다. 박리다매로 운송비를 낮추고 소비자에겐 정상 택배비를 받는 소위 ‘리베이트 마진’이 가능하단 소리다. 요새는 브랜드 의류도 이런식의 인터넷 판매방식이 부쩍 늘었다.
물론 기대와 희망도 공존한다. 디자이너들은 그들을 필요로 하는 수요의 ‘디자이어(Desire)’를 해외의 한인전용 숍 등 틈새시장에서 찾는다. 여유있는 디자이너들은 치솟는 원단가격 등을 고려, 중국에 직접 사무실을 내고 필요한 원단을 공급받기도 한다. 원단공급업자들 중 잘 나가는 이들은 능력이 검증된 디자이너들을 ‘알바’로 고용해 자신들이 생산해낸 원단을 직접 홍보한다. 도매상들은 해외로 판매선을 다각화 하고 있다. 요체는 ‘원스톱 공정’ 이 무너지고 있는 게 아니라 기존의 시스템에서 수많은 가지치기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종로5가에서 15년 째 원단도매업을 하며 유명 디자이너들과 직거래도 하고 있는 김진석(가명ㆍ45)씨는 “동대문은 망하지 않았다.다만 문제가 있다면 원료부터 디자이너, 생산 등 모든 부문에서 살아남는 곳들만 살아남고, 영세한 곳들은 고사하는 양극화 현상이 이쪽 업계에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 아니겠느냐” 며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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