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1> 붉은 길, 푸르른 마음 (29)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한 탕 뛰자고?”
강준호가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역시 저속한 느낌을 풍기는 제안에는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하는 힘이 있었다. 조금도 익지 않은 날 것 같은 냄새, 왠지 모르게 허벅지가 근질거리는 듯한 은근한 쾌감.
“유리에겐 미안하지만… 옷 벗고… 쇼나 한 번 더 하자고요. 열흘 운 년이 보름은 못 울겠습니까?”
“좋아, 한 탕 뛴다고 치자. 그런 뒤에 우리에게 돌아오는 게 뭐야?”
“돌아오는 건 없습니다.”
“그럼 미쳤다고… 옷 벗고 쇼를 하니?”
“꼭 미친 건 아닙니다. 이를테면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이는 셈이지요. 저 앞자리… 비즈니스 석에 폼 잡고 앉아있는 유호성의 기를 죽이자는 겁니다.”
“그~래?”
강준호는 침을 꼴깍 삼켰다. 조금이라도 긴장되는 순간이면 나타나는 버릇이었다. 그는 두어 차례 침을 꼴깍거린 후에 은근히 강유리를 바라보았다. 눈빛으로 그녀의 의향을 묻는 셈이었다.
“까짓 거, 못할 이유도 없지요. 그러지 않아도 신 회장님이 유호성을 감싸고 돌 텐데… 미리 장을 지져놓는 것도 방법이지요.”
“그렇지? 수습기자 뺑뺑이 돌리는 것처럼 유호성도 뺑뺑이 좀 돌려야지? 그 작자야말로 명실상부한 골프 초보 아니겠니?”
강준호, 강유리, 백광돌… 이렇게 세 사람은 대번에 합의를 보고야 말았다. 어쩌면… 그토록 합의가 쉽게 이루어진 것은 어디선가 꿈틀꿈틀 번져 나오고 있는 위기의식 때문인 지도 몰랐다.
“그런데, 유리 양 치마가 조금 길어. 어쩌지?”
백광돌이 선반트렁크에 넣어둔 퍼터를 꺼내며 유리에게 물었다. 그는 명실상부한 골프 매니저였으므로 다른 장비는 몰라도 골프 퍼터만큼은 늘 가까이 보관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서부의 총잡이가 늘 손닿는 곳에 총을 놓아두듯이.
“걱정 마세요. 옆을 트면 되지요. 터진 치마 옆으로 허벅지가 드러나는 모습에 남자들이 미친다는 것도 잘 알아요.” 이 말을 끝으로 강유리는 즉각 행동에 나섰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의논 따위는 애초부터 필요 없었다. 유호성과 함께 처음으로 거행하는 남아공 골프 전지훈련에서 헤게모니를 쥐자는 것, 아울러 골프 초짜인 유호성의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놓자는 제안에 그녀는 저절로 흥이 났던 것이다.
“자, 여기 퍼터… 그리고 공 한 다스가 있어.”
“어떤 식으로 바람을 잡지요?”
“그냥… 무료해서 가볍게 체조 하는 것처럼… 복도를 먼저 장악해봐.”
“알았어요, 아빠. 그럼… 치마 옆부터 틀게요.”
그녀는 볼펜 끝으로 치마 옆의 꿰맨 자리부터 트기 시작했다. 처음엔 볼펜 끝이 무디게 여겨지더니 한 땀의 실이 풀려나가자 그 다음부터는 리듬을 타듯이 술술 실밥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곧 그녀의 치마 옆이 벌어지고, 검은 벨벳 자락 틈으로 희고 매끈한 허벅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쩌나… 검은 치마는 엉덩이 부근까지 깊게 틈이 벌어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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