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도둑질에 미치는 영향
연인도 도둑질을 한다. 역(逆)도 성립한다. 도둑도 ‘연애질’을 한다.
물론 연인들이 훔치는 것은 서로의 마음이다. 반면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건 절대 탐하지 않아야 진짜 도둑이다. 하지만 날고 기는 도둑이라도 때로 흔들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고 수십, 수백억원짜리 다이아몬드를 손쉽게 훔치는 대도라도 쉽사리 얻지 못하는 게 다른 이의 마음이다. 감상에 빠진 킬러처럼, 사랑에 빠진 도둑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사랑에 눈이 멀면 장물도 퇴로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
사랑에 빠져 도둑질에 함께 나선 남녀가 있었다. 여자가 원래 도둑이었고, 남자는 순하고 고지식한 중학교 ‘선생님’이었다. 교사의 일상은 시계추처럼 뻔했다. 아이들 태반이 조는 재미없는 강의를 하고 학교 문을 나서면 할 일이 없었다. 성가대에서 노래하는 일과 비디오 보는 일이 전부였다. 유일한 낙은 흘러간 옛 영화에 빠지는 것이었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자신과 달리 멋졌고, 비디오테이프가 보여주는 세상은 흥미진진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자신과 달리 거침없고 발랄한 사람이었다. 자신을 ‘몬테소리 교사’라고 했다. 모든 연애가 그렇듯 처음은 짜릿했다. ‘네 멋대로 해라’의 장 폴 벨몽도와 진 세버그처럼 시가를 걷기도 하고, ‘줄 앤 짐’처럼 미친 듯이 내달리기도 했다. 그런데 밤마다 사라지는 여자가 미심쩍다. TV에선 연일 흉악범죄를 저지른 연쇄살인범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왔다. 의심이 더해가고, 결국 여자는 자신이 도둑임을 밝힌다. 고(go)냐, 스톱(stop)이냐. 삶이 통제를 벗어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연애에 빠진 모든 남자는 결단해야 한다. 남자는 마음 가는 대로 몸을 내맡기기로 한다. 함께 도둑질에 나선다. 그리고 늘 그렇듯 사랑은 도둑질에 치명적이다. 2000년작 영국 영화 ‘브렌단 앤 트루디’다.
오는 25일 개봉하는 최동훈 감독의 영화 ‘도둑들’은 하이스트 필름(heist film)이나 케이퍼 무비(caper movie)라고 일컬어지는 장르의 작품이다. 도둑 혹은 강도 영화라는 뜻이다. 주로 떼도둑들이 작전을 짜고 물건을 훔치는 이야기를 담는다. 속고 속이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훔친 물건의 향방을 끝까지 짐작할 수 없게 만드는 데 이 장르의 묘미와 재미가 있다. 그런데 ‘도둑들’에서 희대의 도둑인 주인공들은 마치 루이스 세플베다의 소설(‘어느 감상적인 킬러의 고백’)이나 김지운 감독의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처럼 어느 순간 감상에 빠진다. 김지운 감독은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의 목소리로 말했다. ‘흔들리는 것은 내 마음인가, 저 나뭇잎인가.’ 그래서 ‘도둑들’은 로맨스에 빠진 케이퍼 무비다.
당대 최고의 도둑들이 마카오의 한 카지노에 숨겨져 있다는 3000만달러짜리 다이아몬드를 훔치기 위해 모인다. 작전 설계자는 전설적인 마카오 박(김윤석 분). 현장에서 사람을 투입하고 장물을 끌어올리기 위한 줄을 담당하는 와이어설계전문가 뽀빠이(이정재 분)와 그의 파트너이자 후배인 잠파노(김수현). 금고 따는 데는 따를 자가 없는 펩시(김혜수 분)와 줄 타는 미녀 예니콜(전지현), 당대 최고의 연기파 사기꾼 씹던 껌(김해숙)까지 7인조의 한국 도둑들은 첸(런더화 분)이 이끌고 앤드루(오달수 분)가 따르는 마카오 현지의 중국 팀과 합류해 ‘미션 임파서블’에 도전한다. 삼엄한 경비와 철통 같은 보안으로 둘러싸인 마카오 암흑가 최고 실력자의 다이아몬드.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지만, 마카오 박은 말한다. “기적이 우리 전공이야.”
한국과 중국팀 간의 신경전이나 뛰어난 미모의 두 여도둑이 벌이는 갈등, 베테랑이지만 술에 빠져 사는 씹던 껌의 알코올중독은 문제가 아니었다. 다이아몬드를 겹겹이 둘러싼 장막이나 한ㆍ중 양국 경찰의 추적조차도 일이 아니었다. 화는 내부에 있었고, 문제는 스스로에게 있었다. 도둑들이 모였으니 사달이 나는 법. 서로 속고 속이고 뒤통수를 치면서도 뻔뻔하게 “도둑이 훔치는 게 죄야”라며 눈 하나 깜짝 않던 이들이었지만 한순간 빠져든 사랑 때문에 일을 그르치게 되는 ‘감상적인 도둑’이었던 것이다. 마카오 박과 펩시 사이에 흐르는 애증의 형식은 신파였고, 젊은 예니콜과 잠파노가 토닥거리며 이루는 관계의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였다. 심지어 첸과 씹던 껌 사이에 국경을 넘어서 오가는 끈적한 시선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멜로드라마가 된다. 누구는 후회와 자책 때문에 다 잡은 고기를 놓치고, 누구는 잠깐 머리를 든 연심에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며, 누구는 애를 태우다 감옥에 간다.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는다. 최후의 승자는 누구일까.
그래서 사랑이 도둑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범죄의 방정식은 이렇게 요약된다. 도둑질은 상수, 사랑은 변수, 함수값은 장물이나 수갑 혹은 살거나 죽거나.
su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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