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옷 색깔이 화려해지고 있다. 희거나, 검거나, 회색이거나. 무채색 일색이던 자동차 색상에도 이제 ‘비비드(vivid) 열풍’이 부는 셈이다. 스포츠카, 튜닝카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던 화려한 색상을 이제 길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자동차가 그저 잘 달리면 그만이란 시대는 끝났다. 나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자동차, 화려한 색깔은 바로 그 시작이다.
색상은 이제 차량 구입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요소로 급부상했다. 글로벌 코팅 제조회사 PPM에 따르면 자동차 구매자 중 30%가 색상을 보고 차를 구매하며 전문 시장조사기관 마케팅 인사이트 조사에서도 자동차 구입 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외관 스타일(67%)로 꼽혔다. 이제 업체별로 품질이나 내구성 등에서 상당 부분 상향 평준화를 이룬 만큼 소비자들이 차량을 구매할 때 점차 성능보다는 디자인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는 의미이다. 자동차업체가 무채색 위주의 자동차 색상에서 탈피, 점차 각 차량의 특성을 반영하는 다양한 색상을 선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동차 색상은 차량의 특성과 콘셉트에 맞춰 개발된다. 1990년대 후반까진 채도가 낮은 검정색이나 흰색 위주였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점차 차량 채도가 다양해지고 있다. 현대ㆍ기아자동차에선 벨로스터가 가장 대표적인 예. 벨로스터는 그린애플, 선플라워, 비타민C, 벨로스터 레드 등 총 9가지 색상으로 판매되고 있다. 특히 스포츠카 등을 제외하곤 일반적으로 좀처럼 보기 힘든 노란색(선플라워)나 빨간색(벨로스터 레드) 등이 각각 전체 판매량의 23%, 18%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현대차 관계자는 “독특한 디자인이 콘셉트이기 때문에 색상도 독특한 색상을 많이 찾는다”고 전했다.
벨로스터 터보에 적용된 무광 색상도 눈길을 끈다. 무광 색상은 국내 최초로 양산차에 도입된 색상으로, 통상 마니아 등이 튜닝을 통해 적용하는 색상이다. 마치 영화 속 ‘배트맨’의 차량과 같은 느낌을 전해주기 때문에 마니아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린다. 현대차 측은 “벨로스터 터보에 최초로 이 색상을 적용했는데 전체 판매량의 20%를 차지할 만큼 인기가 높다”고 밝혔다. 그밖에 레이싱카처럼 스포츠데칼을 꾸민 디자인 등도 눈에 띈다.
기아자동차의 레이 역시 전략적으로 다양한 색상을 적용한 모델. 기아차 관계자는 “30대 젊은 층을 타깃으로 개발된 차량이기 때문에 그에 맞춰 독특한 디자인에 어울릴 레이 고유의 색상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레이가 총 10가지의 색상을 갖춘 것도 기아차의 이 같은 의도가 담겨 있다. 그 결과 무채색 계열이 판매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반 모델과 달리 레이는 아쿠아 민트, 밀키베이지 색상이 전체 판매량의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 기존 무채색 역시 점차 세분화되고 있는 추세다. K5의 경우 은색 계열이 가장 많이 팔리는데, 이 색상도 각각 은빛실버, 세틴 메탈, 플라티늄 그라파이트, 라이트 그라파이트 등 4가지로 나뉜다. 검정색도 다 같은 색이 아니라, 제네시스의 블루 발티코, 브라운 모로처럼 다른 색을 조금씩 첨가하거나 그랜저HG의 블랙다이아몬드, K7의 흑진주처럼 질감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최근 기아차가 선보인 K9도 색상에 차별화를 주고자 많은 시도가 이뤄졌다. 그 결과 K9는 일반적인 프리미엄급 세단이 3번의 도장을 거치는 것과 달리 4번의 도장을 거쳐 색상의 깊이감을 더했고, 여성 소비자까지 겨냥해 총 7개의 색상을 확보했다.
색상만큼 독특한 색상명 역시 저마다 유래가 있다. 현대ㆍ기아차 관계자는 “그냥 색상을 직설적으로 표현해주기보다는 차의 이미지를 담아 이름을 짓는다”고 전했다.
벨로스터 등 현대ㆍ기아차 모델에 적용된 색상의 이름도 이런 의도를 반영했다. 노란색이란 이름 대신 그린애플, 비타민C, 선플라워 등으로 표현했다. 스톰트루퍼(화이트펄)는 영화 스타워즈의 등장인물, 스톰트루퍼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된 색상이다. 또 국내 최초 무광색인 영건은 젊고 어린 유망주를 의미하는 ‘영건’에서 유래됐다. 마멀레이드는 마멀레이드잼에서 따온 이름이다.
색상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는 만큼 새로운 색상을 개발하려는 업체 간의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현대ㆍ기아차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색상을 차량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며 “현대ㆍ기아를 상징하고 각 모델을 대표할 수 있는 색상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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