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8회> 모든 길은 하나로! 37
‘자칫하면 회사를 접을 수도 있다.’
유한솜을 통해 이 말을 들은 신희영은 금세 얼굴부터 하얗게 질려버렸다. 더구나 그 말이 전략기획팀장인 한승우의 입으로 릴레이처럼 전해져 왔다는 것에 무척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유민, 그 영감탱이가 그렇게 지껄였단 말이지? 그런데, 그룹에 회사가 한두 개야? 도대체 누가, 어떤 회사를 접는다는 거야?”
방금 전까지 게리플레이어 골프장 그린 위에서 강준호와 함께 투우놀음을 하고 들어온 직후였으므로 어깨와 허리만을 대충 가리고 있는 그녀의 나이트가운에는 군데군데 녹색 풀물이 배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상관하지 않았다. 까짓 잠옷이든 속옷이든, 그걸 벗었든 걸쳤든… 그런 건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회사가 망한다니 말이다.
“한 실장! 한 실장도 들었지요? 회사를 접는다고? 회사도 회사 나름이지… 어떤 회사를 접는다는 거야?”
그녀는 풀물이 든 나이트가운 차림 그대로 한승우를 찾아갔다. 숨은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아직도 달콤한 사랑의 흔적이 묻어 있을지도 몰랐다. 별이 총총히 떠 있는 들판 위를 뒹굴며 청춘예찬을 구가했으니… 모르긴 해도 사랑의 흔적은 온몸에 육화되어 있을 법했다.
“맞아요. 회사도 회사 나름이지요. 지금 유민그룹에서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회사라고는 제련회사 하나밖에 더 있습니까? 그런데 그룹의 등뼈와 다름없는 그 제련회사를 접어야 할 판이란 말입니다. 제련회사가 쓰러지면 다른 모든 계열사들도 줄줄이 쓰러지게 될 것이 뻔하고요….”
“에그머니나! 그런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작자가 누구야?”
“유언비어가 아닙니다. 회사 주거래은행에서 단돈 3000만원도 돌려막을 수 없는 지경이라고요.”
“그래? 정말이에요?”
“자칫하다간 회장님… 이혼한 뒤에 챙길 돈이 땡전 한푼 없을 경우도 생겨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신희영의 낯빛은 어느새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렇게 세월을 낚시질하면서 전 세계 골프장 유람이나 다닐 처지가 아니었다. 한시라도 빨리 귀국해서 사태 파악을 하고 줄줄 새나가는 돈부터 막아야만 했다.
“한 실장, 당장 내일 귀국할 준비부터 해주세요. 그리고… 우리 호성이, 호성이 좀 찾아주시고… 강유리, 강 프로 다 어디 간 거야? 빨리 수소문해서 모두들 내 방으로 오라고 전해주세요.”
이른바 해외 전지훈련을 빙자한 그녀의 세상 나들이는 불현듯 종지부를 찍어야 할 처지에 놓이고야 말았다. 유민그룹의 대주주이며 경영 1인자인 유민 회장이 옛날 연인 현성애와 함께 밤을 지새우며 제 마누라를 낭떠러지에서 밀어버릴 궁리를 하고 있는 동안 벌어진 사건이었다.
“천 부장, 조 차장! 이 사람들 다 어디 갔어? 당장 귀국할 비행기 표부터 알아봐야 할 것 아냐?”
그저 만만한 게 홍어 꼬추라고… 한승우에게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전해듣고도 천 부장과 조 차장을 향해 화풀이를 할 뿐이었다. 그러나 천 부장, 조 차장인들 귀가 없을까? 본인의 생살여탈에 관한 뉴스가 본국에서 떠돌고 있는데, 설마 그 정도를 감지할 만한 안테나도 장착되어 있지 않으려고?
“누굴 호구로 아시나? 해직당한 지 벌써 닷새가 지났는데… 아직도 회장 벼슬을 하고 있는 줄 아시나 봐?”
그들은 멀찌감치 떨어진 호텔방에서 하릴없이 옆구리나 벅벅 긁어대던 중이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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