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3회> 사랑을 위한 의식 (11)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자, 지시하신대로 동영상 사진을 입수했습니다. 검토해 주세요.”

권도일은 재벌2세에게 두 개의 포터블 USB 외장 형 하드케이스를 내밀었다. 그 하나에는 소위 ‘백마-월정 고속도로’의 개통식 현장이 담겨있었고, 다른 하나에는 ‘젠 세계 여자 프로골프 겨울대회’가 열리던 날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래요? 따끈따끈한 소식인가요?”

“네, 도형철을 통해서 복사해왔습니다. 모두 북한 당국에서 공개한 내용이고요, 조작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구해오기도 어려웠지만 그걸 컴퓨터 화면으로 재생해 보면서 거성그룹의 사업향방을 점치는 것도 쉽지는 않을 터였다. 무엇보다도 북한통이라 일컬어지는 전문가 그룹을 초청하여 배석시키는 일이 필요했다. 그러니 우선 동영상을 틀어보며 사진에 찍힌 인물들이나 검토하자는 것이 재벌2세의 생각이었다.

“우선 백마-월정 고속도로 개통식 모습부터 틀어봅시다. 도대체 외국인들을 얼마나 모아놓고 뻐겨댈지 궁금하군요.”

재벌2세는 컴퓨터 앞으로 의자를 바싹 끌어당기며 말했다. 입천장이 버석거리며 입에 침이 마르는 기분이었다.

“1차 검토결과 겉으로 볼 때엔 다른 행사와 특별히 다른 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사람이…”

권도일은 재벌2세 옆으로 다가서서 손가락으로 화면을 훑어가기 시작했다. 획일적인 군복, 혹은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 중에서 그가 찍은 사람은… 알이 짙은 안경을 쓰고 키가 유난히 작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누굽니까?”

“제임스 리 박사입니다. 지난여름 이스라엘에 갔을 때…”

“아, 블루 드라이브 기술 수석 연구원이었던 그 사람? 에어 뮬 개발상황이 담긴 USB 다섯 개를 지닌 채 실종되었다던 그 사람 말입니까?”

“네, 이 사람… 제임스 리 박사가 분명합니다.”

소위 ‘백마-월정 고속도로’를 개통하는 날,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자격으로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의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다니고 있었다. 곧 개최될 5개국 관통 랠리경기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가야 할 제6사단장, 그리고 도형철의 모습도 눈에 띄었지만 그들이 새롭게 권도일의 관심을 끌리는 만무했다.

그들은 자유롭게 몰려다는 것 같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봐도 나름 서열을 흩트리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로동신문의 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대기만 하면 상위서열자 보다 한 걸음이라도 뒤로 물러서기 위해 움찔거리는 모습은 가관이기도 했다. 그런 어정쩡한 사람들 틈에 통나무처럼 굳은 모습으로 서있는 자는… 분명 제임스 리 박사였다.

“아니, 우리나라에서 실종처리 된 사람이 어떻게 북한당국의 큰 행사에 참석했을까요?”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사진 속의 이 인물이 제임스 리 박사라면 아랍 권 석유카르텔의 하수인들인 N-Dos 단이 마수를 뻗친 게 확실하다는 뜻이 됩니다.”

“N-Dos 단원들이 무슨 일로 북한당국과 결탁했을까요? 궁금해 미치겠네.”

재벌2세는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권도일은 더 이상 마음속에 품고있는 비밀을 발설할 수 없었다. N-Dos 단원들의 행동목표가 신 개념 자동차를 개발하는 전 세계 과학자들을 은밀히 제거하는 일이라고 밝히는 순간 거성그룹에는 비상사태가 발령될 것이 뻔했고, 그 즉시 유호성 선수를 기권시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으므로… 권도일은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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