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회장 前임원들 초청만남 산업적 측면 연구·도서 출간등 2015년 10주기맞춰 업적 알리기
‘포니정’으로 불리며 한국 자동차산업의 기틀을 세운 고(故)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본격화한다.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셋째동생이었던 그는 과거 32년간 현대자동차에서 근무하며 오늘날 현대차가 글로벌 5위의 자동차회사가 되는 데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업적이 주목을 받지 못했다.
1일 재계에 따르면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부친인 정세영 전 명예회장과 과거 현대차에서 함께 근무했던 전직 임원들을 초청해 만남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모임에는 전직 고위 임원 30여명이 참석했으며,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정 전 명예회장을 회고하고 다시 조명하는 문제에 맞춰졌다. 특히 이들 인사는 정세영 전 명예회장의 10주기인 오는 2015년에 맞춰 ‘건설인’이 아닌 ‘한국 자동차의 아버지’로서 그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져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동차산업적 측면에서 정세영 전 명예회장에 대한 연구와 도서 출간 여부도 검토됐다는 전언이다.
초대 현대차 사장을 맡기도 했던 정세영 전 명예회장은 한국의 자동차산업을 견인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1967년 현대차 설립과 동시에 사장에 취임한 그는 열악한 조건에도 1968년 1호차 ‘코티나’를 생산했고, 1974년 포드 사와의 합작이 난관에 부딪히자 고유 모델 개발에 돌입해 2년 뒤 최초의 한국형 승용차 ‘포니’를 만들어냈다. 포니는 판매 첫 해 1만726대가 팔리며 국내 최초 1만대 판매를 돌파한 모델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1987년에는 현대그룹과 현대차 회장을 맡으면서 국가 기간산업으로의 자동차 해외 시장 개척에 주력했다. 이후 ‘쏘나타’(1989년), ‘엘란트라’(1990년), ‘엑센트’(1994년) 등을 비롯해 ‘아반떼’(1995년)를 잇달아 세계 시장에 선보이며 한국 자동차를 알려나갔다. 특히 1986년에는 포니와 ‘엑셀’이 미국 10대 상품에 선정되면서 ‘포니정’이라는 애칭도 얻었다.
하지만 1999년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면서, 결국 경영권을 조카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넘겼다. 이후 32년간 몸담았던 현대차를 떠나야 했으며, 당시 현대차 부회장이었던 장남 몽규 씨와 함께 현대산업개발 경영권을 넘겨받아 건설인으로 제2의 길을 걸었다.
<김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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