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를 통해 본 기업의 흥망성쇠 키워드
6년 전 겨울. 강덕수 STX그룹 회장은 처음으로 출입기자들과 대규모 송년 만찬 자리를 가졌다. 서울 하얏트 호텔 근처 식당에서 진행된 만찬장에는 커다란‘ ㅁ’자 모양으로 테이블이 놓였으며, 강 회장의 답변이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오고 있었다.당시 기자도 함께 한 이 자리에서 강 회장은 재계의 기득권층을 의식한 듯‘ 서울 사람 텃세로 STX 본사를 서울에 두지 않으려고 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꺼내놓기도 했다.
곧이어 비공식 대화가 강 회장 테이블중심으로 진행되자, 멀리 떨어진 기자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이에 강 회장은 곧바로‘ㅁ’자 모양으로 배치된 테이블 안에 들어가더니, 모든 테이블을 돌면서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했다. 여느 재벌과 달리 샐러리맨 신화를 쓰고 있던 강 회장의 적극적인 태도가 엿보이는 장면이었다. 이 자리에서 강 회장은 그해 인수한 세계 최대 크루즈 건조사인‘ STX유럽(옛 아커야즈)’탐방을 약속하기도 했다.
강덕수 회장과 STX. 지금은 실패의 아이콘처럼 돼버렸지만 10년전만 해도 강 회장은 STX팬오션 인수를 계기로 재계의 기린아로 떠올랐으며, 이후 불과 5년 만에 재계 12위 그룹으로 성장, 대한민국 재계사를 새롭게 썼다.STX의 역사 속에는 일반 기업의 흥망성쇠 요인이 모두 녹아있다. 강 회장과 STX가 보여준 스피드(Speed), 타이밍(Timing),글로벌(Global), 인재(Human), 관계(Relationship) 등은 일반 성장 기업에서도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반면 업황(Industry Outlook), 참모(Advisor), 시스템(System), 금융(Finance), 네트워크(Network) 등은 오늘날까지도 신생 기업의 약한 고리로 작용하고 있다.
▶성장 기업의 5가지 공통점=먼저 스피드(Speed)를 꼽을 수 있다. STX가 급속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강 회장의 스피드 경영이작용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수동적 경영이 아니라‘ 길이 있으면 일단 건너고 보는’ 적극적인 경영 스타일 덕분에 STX조선해양ㆍ에너지ㆍ팬오션 등의 인수가 가능했다.
스피드 경영은 경영자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으나, 인수합병(M&A) 전에서는 예외로 작용한다. 경영자의 빠른 판단이 매우 중요하며,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도 성장기에 오너의 빠른 결단을 바탕으로 대규모 M&A에 성공할 수 있었다.
업황과 직결되는 타이밍(Timing)도 기업성장기에 매우 중요하다. 사실 STX그룹의 성장에는 사상 유례가 없는 조선업의 장기호황이 뒷받침됐다. 2001년 STX조선해양인수 이후 세계 조선시황은 2008년 금융위기까지 사상 최대 호황을 누렸고, 2004년 STX팬오션 이후 해운시황은 발틱운임지수(BDI)가 사상 최초로 1만 포인트를 돌파하는 등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성장세를 기록했다. 강 회장도 이 점을 감안해 평소 사석에서“ 많은 이들이 저의 성공 비결을 물어오는데, 저의 대답은 하나다. 운이 참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내 대표 인터넷기업으로 성장한‘ 네이버’만 보더라도 1990년대 IT 호황기에 기반을 잡고 한게임 등을합병하며 급속 성장세를 이어갔다.
글로벌(Global) 전략도 성장 기업의 주요키워드다. 강 회장은 독과점 체제의 국내시장 승부는 애초부터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하고 수출 중심으로 해외에서 승부를 낼 방법을 택했다. 실제 STX는 그룹 매출의 90% 이상을 수출을 통해 일궈내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해외 매출 비중이90%를 넘고 현대차 역시 절반 이상의 매출이 해외에서 발생하는 점을 감안할 때글로벌 전략은 기업 성장에서 필수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인재(Human)를 중시한 모습도 성장하는 기업의 단면을 보여준다. 한 때 STX그룹은 대학생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기업으로꼽히기도 했는데, 이는 고졸로 쌍용에 입사한 강 회장이 인재육성에 쏟은 열정이 영향을 미쳤다. 일례로 강 회장은 STX팬오션 인수 당시 자신을 반대했던 기존 임원을 한명도 해고하지 않는 등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다.
사회와 관계(Relationship)도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 중요하다. STX그룹의 경우 장학재단과 복지재단을 설립하는 한편 농어촌사랑 1사 1촌 자매결연 사업에 나섰다. 이 같은 사회공헌 활동은 지금도 성장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고 있다.
▶쇠퇴 기업의 5가지 공통점‘=산이 높으면골이 깊다’는 말처럼 거칠 것 없이 나아가며 10대 그룹을 위협하는 위상으로까지성장했던 STX그룹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급속히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신생 기업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동전의 양면 처럼 STX의 성공요인은 실 패요인으로 바뀌었다. 먼저 조선 업황(Industry Outlook)이 꺾이면서 STX의 자금난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조선과 해운 업종의 불황이 찾아 온 시점에 STX의 해외 투자가 진행되고 있어 불황의 충격이 더욱 컸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금융위기가 2~3년만 늦게 왔더라도 STX그룹의 운명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아이러브스쿨 같이 한때 잘 나가던 인터넷 업체도 2000년대 초반 IT산업의 업황이 꺾이면서 사라졌다는 사실은 업황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헌신적인 참모(Advisor)가 없는 것도 쇠퇴 요인이다. 조선업의 일시적 호황을 오판해 강 회장의 무리한 해외 투자가 지속되고 있었음에도 이를 바로잡을 참모가 없었다. 대한전선이 현재까지 과도한 해외투자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도 과거 경영진의 오판을 바로잡기 위해 직언한 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잘못된 판단에 실망한 임직원들은회사를 떠나기만 했다.
효율적인 의사결정 시스템(System)이 없는 것은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STX는 기업 규모가 재계 12위 규모로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강 회장 중심의 의사결정이 이뤄졌으며, 임원진들 또한 강 회장의 눈치만 보는 상황이 계속됐다.
이는 임기응변식의 의사결정이 이뤄지게 했으며, STX의 몰락을 가져오는 데 일조했다. 이 같은 모습은 STX그룹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신생그룹이 항상 보여왔던 문제이다. 그룹의 규모나 위상은 커져가는 데 이를뒷받침하는 시스템이 없어 사라지는 기업이 많았다.
무책임한 금융(Finance)도 신생기업에는엄청난 벽으로 작용했다. STX의 부실 위기는 오래전부터 지적됐지만, 채권단은 현실적인 구조조정 방안의 실천이 아니라, 대출상환 및 위험회피에 주력했다. 이는 결국 합리적인 문제 해결의 기회를 원천 봉쇄하는 역할을 했다.
네트워크(Network) 역시 신생기업에게 도전 과제로 꼽힌다. 몇 대에 걸쳐 재산을 축적하고 엄청난 규모의 대외 네트워크를보유하고 있는 기존 그룹들의 경우 일시적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있지만, 강 회장처럼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신생 그룹 오너의 경우 단 한번의 실패가 그룹의 몰락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 우리나라의 엄연한 현실이다.
성공요인 5가지Speed : 경영인의 빠른 판단 Timing : 조선업 장기 호황 Global : 수출중심 해외 승부사 Human : 열정적인 인재육성 Relationship : 1사1촌 자매결연
실패요인 5가지 Industry Outlook : 무리한 투자 Advisor : 혁신적인 참모 부재 System : 임기응변식 의사결정 Finance : 대출상환에 급급 Network : 기업간 교류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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