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아버지는 언제부턴가 주위가 유난히 조용하다고 느꼈다. 보이지 않는 투명 막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듯도 싶었다. 피아노 건반을 조심스럽게 눌러보다 답답함에 다시 힘차게 두드려보지만 소리는 가늘고 멀다. 순간 눈 앞이 캄캄해지고 가슴이 콱 막혔다. 더 이상 귀가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들은 밖으로 나돌았다. 힙합에 빠져 아버지가 얼마나 아프고 힘들어하는지 헤아리지 않았다. 당장 내 앞의 일이 신나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한편으론 아버지가 지켜온 클래식음악 만큼이나 힙합이나 랩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걸 입증해보이고 싶었다. 그런 아버지와 아들이 10여년이 지나 스튜디오에 나란히 섰다. 아들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아버지는 그저 흐뭇해 아들의 손을 자꾸 쓰다듬었다.
지난 2일 음원 출시와 함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속사포 래퍼’ 아웃사이더(32ㆍ본명 신옥철)의 디지털싱글 ‘손’은 이렇게 나왔다. 세월호 참사로 가족의 소중함과 이웃의 아픔에 목이 매이는 때에 ‘손’은 상처와 위로, 고마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촉촉이 마음을 적셔주고 있다.
‘손’은 아들인 아웃사이더가 아버지에게 드리는 음악적 선물이다.
“아버지는 저의 음악의 출발이에요. 그 의미를 깊게 나누고 싶어서 아버지와 함께 스튜디오 촬영도 했는데 어색해하시면서도 좋아하시더라고요. ‘너랑 낚시 온 기분이구나’ 하시면서요.”
그는 ‘사소한 것에 아버지가 이렇게 좋아하시구나’ 또 한번 울컥했다.
사진속 아버지는 장성한 아들보다 힘이 없고 작아 보이지만 만족스러움이 얼굴 가득하다.
아버지는 아들이 랩을 업으로 삼겠다고 하자 반대했다. 취미로 했을 때는 랩이 어려울 때 힘이 됐지만 업이 되면 오히려 힘들어진다는 걱정이었다. 이제 아버지는 스스로 아들의 음악 조언자가 됐다.
아웃사이더의 랩은 빠르고 외롭다.이번 곡 ‘손’도 예외가 아니다.
“손을 내밀어서 니 손을/잡으려 했을 때도/쓸데없는 행동이라며/무참히 등을 돌렸지만/몰랐지 나를 향한 너의 눈빛(중략) 널 잃어버린 내 모습은/처량하기 짝이 없는 버림받은 아이~”
2006년 데뷔앨범부터 그의 히트작 ‘외톨이’‘슬피우는 새’‘삐에로의 눈물’ 등 거의 모든 곡에는 눈물이 빠지지 않는다. 눈물도 중독되는 걸까.
“랩은 하고 싶은 얘기를 담아내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게 많다보니 랩을 빨리 하게 돼요. 무엇보다 솔직하게 자신의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야 공감대가 큰 것 같아요. 아프고 힘들었던 상처를 끄집어내 쓰면서 저도 치유되고 노래를 듣는 이들도 ‘나만 아픈게 아니구나’ 위로를 받나봐요.”
2009년에 발표한 ‘외톨이’는 그런 면에서 반향이 컸다. 그는 당시 중학생들로부터 많은 편지를 받았다. 왕따를 당해 창문에서 뛰어 내리려던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외톨이’를 듣고 노래를 찾아 들은 뒤 큰 위로를 받았다는 편지도 있었다. 그는 그때 음악적 소통이란 책임감을 무겁게 느꼈다.
그의 음악이 더 슬픈 건 현과 피아노를 많이 사용하는 탓도 있다.
현의 미세한 떨림에 그는 쉽게 무너진다. 그런가하면 현의 묵직함도 좋아한다. 그런 여리면서 강한 모습이 아픔을 이겨내려는 자신의 랩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자꾸 ‘아프다, 슬프다’ 하면서 털어놔야 상처가 치유된다고 생각해요. 안에 품고 있다가 나중에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깨닫기 전에 말이에요.”
랩과 힙합은 주류장르는 아니지만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음원차트에 변화가 생겼다. 이전에 인기 차트 100위권안에 한,두곡 정도 겨우 끼어있었던게 지금은 30여곡에 이른다. 마니아 중심의 음악이 대중화되는 분위기다. 보컬 없는 랩만 있는 곡도 즐겨 듣는 이들이 많다.
그는 그 이유를 랩의 쟝르적 특성에서 찾았다.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와 삶을 가장 잘 반영하는게 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랩이 인기를 얻는 것은 그만큼 할 말이 많은 사회, 아프고 위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랩은 바로 그 정체성 때문에 한계가 있어요. 대중은 쉬운 멜로디와 가사를 기억하거든요. 랩은 따라 부르기가 어렵잖아요.”
그러다보니 최근에는 보컬과 랩의 콜라보가 유행이다. 하고 싶은 얘기는 속사포로 랩에 담고, 후렴은 보컬이 감성적 멜로디로 다가가는 양식이다. 그는 지난해 발표한 미니앨범 ’Rebirth‘에서는 엠블렉의 지오, 이수영 등과 이런 다양성을 시도했지만 이번에는 ‘아웃사이더 다움’으로 돌아왔다.
이번 싱글 ‘손’은 19금 그래픽 노블 뮤직비디오로 화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아들의방황과 아버지의 충격적인 고백과 화해로 이어지는 뮤비는 문학과 영상의 감성대를 지나 정서적 울림을 준다.
‘속사포 랩 선두주자’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 그는 아닌게 아니라 1초에 17음절을 질주한다. 그런데 음운 하나하나가 눈 위에 똑똑 찍힌 새발자국처럼 또렷하다는 점에서 불가사의하다.
그는 아나운서 지망생들의 발음 자문을 할 정도로 정확한 발음을 구사한다.
“어떤 발음이 안되는 건 일상의 습관 때문이에요. 매일 만나는 사람과 만나고 비슷한 얘기를 하면서 특화된 형태의 발음만 하다보니 구강구조가 거기에 맞게 굳어진거죠. 혀는 근육이기 때문에 운동하면 달라질 수 있어요. 볼펜을 물고 발음하는 것 보다 더 좋은 방법은 책을 소리내서 많이 읽는 거에요.발음 뿐만아니라 감수성, 표현력도 늘어요.”
아웃사이더는 오는 8월께에 미니앨범을 내고 본격적인 활동을 벌인다. 당초 4월에 진행하려던 전국투어도 펼친다.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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