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드라마의 시작은 미약했다. 2회 방송분에서 0.4%로 자체최저시청률을 기록했다. 모두가 보진 않았지만 ‘입소문’이 시작됐다. 최고 6.89%까지 오르며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응답하라 2016’이라는 수사가 붙을 만큼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20대 청춘들의 이야기로 안방을 찾은 JTBC 드라마 ‘청춘시대’다.

드라마는 2006년 ‘연애시대’로 두터운 마니아 층을 형성한 박연선 작가가 집필을 맡았다. 제목도 ‘청춘시대’, 마치 박 작가의 ‘시대’ 시리즈라는 인상마저 준다. “비슷한 제목 탓에 10년 전 ‘연애시대’의 연장선에서 제목을 받아들이면 어쩌지 싶은 부끄러움이 있었다”고 한다.

드라마의 원제는 ‘청춘시대’ 속 셰어하우스 이름이기도 한 ‘벨에포크’였다.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이다. “애초 청춘의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한 집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청춘들이 나오게 됐고, 사람들은 그 시절이 굉장히 아름답고 좋은 시절이라고 보지만 정작 그 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시절의 아름다움을 모르잖아요.” 이러한 의미를 담아 ‘벨에포크’로 원제를 붙였으나 반대에 부딪혔다. “돼지고기집 상호같다는 이야기도 있더라고요.(웃음)”

드라마는 본의 아니게 ‘청춘시대’라는 제목으로 그 ‘아름다운 시절’을 살아가는 5명의 여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았다. 외모, 성격, 살아온 환경, 취향, 연애스타일이 모두 다른 이들이 소통을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로 다양한 시청층의 지지를 받았다.

누구나 특별한 드라마가 있다지만, 한 걸음 물러나보면 모두의 삶은 지극히 평범하다. 드라마는 매회 주인공이 바뀌는 에피소드 식 구성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들의 이야기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한 집에 모여사는전혀 다른 5명이 “소통하지 못 하는 이유”를 찾아가다 보니 복잡한 이야기가 이들에게 만들어졌다. 저마다의 집안사와 트라우마로 남은 사건들을 통해 평범하고 일상적인 20대 청춘의 이야기에 특별한 옷을 입혔다. 저마다 안고 있는 비밀들이 드라마에 미스터리를 입힌 요소였다.

“이야기는 미스터리라고 생각해요. 비밀이 없는 이야기는 재미가 없잖아요. 굳이 범죄, 장르물로의 미스터리를 넣은 것은 짧게는 12시간, 길게는 20시간 가량 드라마를 끌고 가야하는데, 인간의 심리와 갈등만 가지고 끌어갈 자신이 없었어요.”

소심한 새내기 대학생 유은재(박혜수)의 복잡한 가정사, 아버지를 자신이 죽였다고 믿는 죄책감을 안고 산다는 비밀은 평범한 스무살 여대생 누구나가 안은 사연은 아니었다. “‘나는 행복하면 안 되는 사람입니다’(7회)라는 회차에서였어요.은재는 죄책감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서, 자신은 질투해서도 안 되고 (남자친구에게) 나를 조금 더 좋아해달라고 말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해요. 웃고 행복하고 싶어도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하죠.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움츠려들지 말고 조금 더 욕망을 드러내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던 인물이에요.”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 모두가 공감하면서도 “내 친구 이야기”라며 빠져들었던 정예은(한승연)은 나쁜 남자에게서 헤어나지 못하는 연애호구였다. “권력관계가 돼버린“ 연애를 마친 뒤,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로 남았다. 침몰한 유람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었다는 비밀을 안고 있던 강이나(류화영)는 “외모와 젊음 덕에” 용돈을 받으며 연애를 하는 ‘매춘’과 ‘연애’의 경계선에 선 인물로 그려졌다. “남녀가 부킹해 술을 마시는데 여자들은 술값을 안 내는 분위기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그것 역시 성상품화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연애를 하며 명품백을 선물받고 용돈을 받아요. 이런 사람들이 스스로 매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을 거예요. 그 경계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인물이죠.”

그와는 정반대로 고단한 삶을 사는 청춘도 있었다. 식물인간이 된 동생의 병원비로 자신을 희생하다 그 지친 현실 앞에서 “20대 다운” 고민은 꿈도 못 꾸는 N포세대 윤진명(한예리)이다. “손을 움직이는 연기조차 디테일”해 박 작가로 하여금 “대본이 빚졌다”는 생각을 불러온 배우 한예리의 균형 잡힌 연기가 드라마의 깊이를 더했다.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사는 과장돼보일 정도의 밝은 성격을 가진 송지원(박은빈)은 이들 네 사람의 관계를 만드는 중심에 있었다. 아쉽게도 12부로 드라마가 줄며 개인사가 생략됐다.

박 작가는 “어쩔 수 없는 드라마적 허용”으로 순탄치 않은 가정사와 복잡한 사건 사고가 그려지게 됐다고 했다.

“정말 아무 일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드라마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각각의 비밀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역으로 사건들을 만들에 된거죠. 그게 어쩌다 보니 모두 죽음과 관련이 돼있다는 공통점이 있었고요. 죽음에 관해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던게 아닐가 싶어요.”

강이나의 에피소드에선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는 시청자도 적지 않았다. “세월호를 가지고 뭔가 창작을 한다는 건 아직은 무섭고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느 기간까지는 해서는 안 되는 일처럼 느껴졌죠. 써놓고 보니 세월호와 닮았다는 생각해요. 저는 어느 재난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인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지, 굳이 세월호의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이들을 통해 ‘청춘시대’는 소통하고 성장했다. 도무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던 ‘쉽게 사는’ 강이나와 ‘매일이 고단한’ 윤진명은 도무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그 벽을 넘었다. “다른 사람도 나와 같다고 생각한다면, 나만큼 주저하고 불안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서로에게 조금 더 친절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죠.”

청춘들의 이야기는 뻔한 해피엔딩으로 나아가진 않았다. 여운이 남았다. “우리의 삶엔 완벽한 해피엔딩도 그렇다고 새드엔딩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됐다고 꽃길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사실 박 작가는 강이나와 같은 일로 생계를 꾸리는 이성친구 “서동주를 죽이려고 했다”고 한다. “(용돈을 받았던) 누님들의 남편들에게 쫓기다 교통사고로 죽고, 강이나가 도로 위 ‘오늘의 사망자 서동주’라는 이름을 보며 그를 추억하는 엔딩을 쓰려고 했어요. 인물에 대한 애정 때문에 차마 죽이지 못했죠. 인물들에 대한 엔딩에 있어 극단의 불행을 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동화같은 끝을 만들 수는 없었어요.” 이들은 그저 오늘을 살아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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