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내가 사면 떨어지고, 팔면 오른다.’
주식시장 개인투자자들에게는 일종의 ‘머피의 법칙’처럼 통하는 말이다. 큰맘 먹고 주식을 사면 기다렸다는 듯 주가가 내려앉고, 더는 버티지 못해 팔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상승한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다. 반대로 외국인이 주식을 사들이면 증시가 오르고, 팔아치우면 떨어진다는 속설도 있다.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농담처럼 오가는 이 같은 이야기가 실제로도 상당 부분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6개월간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순매수한 날에는 약 87%의 비율로 코스피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개인투자자가 순매도한 날에는 무려 91%의 비율로 코스피가 올랐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외국인이 사면 오르고 팔면 내리는 경향이 한층 뚜렷해졌다. 개인투자자의 매매 방향과 코스피가 정반대로 움직이는 현상 역시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외국인 사면 86% 상승…10월 들어선 수급·지수 방향 92% 일치
한국거래소의 일별 투자자 매매동향과 코스피 지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4월 21일부터 10월 21일까지 최근 6개월간 외국인이 국내 유가증권시장에서 순매수한 날은 총 37거래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코스피가 상승한 날은 32거래일로 86.5%에 달했다. 외국인이 주식을 사들인 날 10번 중 9번 가까이 코스피가 올랐다는 의미다.
같은 기간 전체 122거래일 가운데 코스피가 상승한 날은 70거래일로 57.4%였다. 외국인 순매수일의 상승 비율이 전체 거래일의 상승 비율보다 29.1%포인트 높은 셈이다. 단순히 증시가 상승세였기 때문에 외국인 순매수일에도 지수가 오른 것만은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최근에는 외국인이 순매도하면 코스피도 하락하는 경향도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 5월만 하더라도 외국인이 순매도한 16거래일 가운데 코스피가 하락한 날은 5거래일에 불과했다. 비율로 따지면 31.3%다. 외국인이 주식을 팔아도 코스피는 오히려 상승한 날이 두 배 이상 많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6월에는 이 비율이 47.1%로 높아졌고, 7월에는 75.0%까지 상승했다. 8월 들어 50.0%로 낮아지기도 했지만, 9월에는 69.2%로 다시 높아졌다. 특히 이달 들어서는 무려 88.9%에 달했다. 10월 1일부터 21일까지 외국인이 주식을 팔아치운 9거래일 가운데 8거래일에 코스피가 하락한 것이다.
외국인의 순매수와 순매도를 모두 고려하면 이러한 변화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외국인이 순매수할 때 코스피가 상승하고, 순매도할 때 하락하는 경우를 ‘수급과 지수 방향의 일치’로 정의하면 5월에는 외국인 수급 방향과 코스피 등락 방향이 일치한 날이 18거래일 가운데 7거래일에 불과했다. 일치율이 38.9%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당시에는 외국인이 주식을 팔아도 코스피가 상승하는 현상이 빈번했다.
그러나 7월에는 일치율이 72.7%로 높아졌고, 8월 65.0%, 9월 75.0%를 거쳐 10월에는 92.3%까지 치솟았다.
특히 10월 들어서는 외국인이 순매수한 4거래일에 모두 코스피가 상승했고, 순매도한 9거래일 중에서는 8거래일에 하락했다. 13거래일 가운데 단 하루를 제외하고 외국인의 매매 방향과 코스피 등락 방향이 일치했다는 의미다.
유일한 예외는 지난 2일이었다. 당시 외국인은 주식을 순매도했지만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0.46% 상승했다. 이 하루를 제외하면 이달 들어서는 외국인 매매 방향이 사실상 코스피 등락 방향과 맞아떨어졌던 셈이다.
개인이 팔면 91% 상승…9·10월 순매수일엔 100% 하락
개인투자자는 정반대였다. 외국인이 주식을 사들일 때 코스피가 상승하는 경향이 강했다면, 개인투자자는 주식을 팔아치울 때 코스피가 상승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최근 6개월간 개인투자자가 순매도한 날은 총 53거래일이었다. 이 가운데 코스피가 상승한 날은 48거래일로 90.6%에 달했다. 개인이 주식을 팔면 주가가 오른다는 증시 속설이 실제로도 10번 중 9번 이상 들어맞았다는 이야기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코스피 상승일 비중인 57.4%보다 33.2%포인트 높은 수치다. 외국인 순매수일의 상승 비율인 86.5%보다도 높다.
개인이 순매도한 날에는 코스피가 상승하는 현상이 최근 6개월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나타났다는 점도 특징이다.
월별로 보면 지난 5월과 6월에는 개인이 순매도한 날 모두 코스피가 상승했다. 각각 5거래일과 6거래일에서 100%의 일치율을 기록했다. 7월에는 75.0%로 낮아졌지만 8월에는 다시 100%를 기록했고, 9월에도 90.9%에 달했다. 이달 들어서도 개인이 순매도한 6거래일 중 5거래일에 코스피가 상승했다.
반대로 개인이 사면 주가가 하락한다는 속설은 최근 들어 더욱 뚜렷해졌다. 전체 6개월간 개인이 순매수한 날은 69거래일이었으며, 이 가운데 코스피가 하락한 날은 46거래일이었다. 비율로 따지면 66.7%다. 개인이 주식을 사들인 날 3번 중 2번꼴로 코스피가 하락했다는 의미다.
최근 두 달만 놓고 보면 비중은 훨씬 더 커진다. 지난 9월 개인투자자가 순매수한 9거래일에는 예외 없이 코스피가 하락했다. 이달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개인이 순매수한 7거래일 모두 코스피가 떨어졌다.
9월과 10월에 개인이 주식을 순매수한 날을 합치면 총 16거래일인데, 이 16거래일 모두 코스피가 하락한 것이다. 개인이 주식을 사들이는 날마다 코스피가 떨어지는 극단적인 현상이 최근 두 달간 나타난 셈이다.
이 때문에 개인의 순매수·순매도와 코스피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비율도 최근 들어 크게 높아졌다. 지난 5월 개인투자자의 매매 방향과 코스피 등락 방향이 반대로 움직인 날은 전체 18거래일 중 10거래일이었다. 비율로는 55.6%에 그쳤다.
그러나 7월에는 81.8%로 높아졌고 8월에는 85.0%까지 상승했다. 9월에는 20거래일 가운데 무려 19거래일에 개인의 매매 방향과 코스피 등락 방향이 엇갈리면서 95.0%를 기록했다. 이달 들어서도 13거래일 중 12거래일에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며 92.3%의 비율을 나타냈다.
최근 6개월 전체로 보면 개인투자자의 매매 방향과 코스피 등락 방향이 반대로 움직인 날은 122거래일 중 94거래일로, 77.0%에 달했다.
기업 실적보다 수급?…증시 방향 가르는 외국인 움직임
이처럼 최근 들어 외국인과 개인투자자의 매매 방향에 따라 코스피 등락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현상은 증시에서 수급이 차지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증권가의 진단과도 맞닿아 있다.
특히 최근 국내 증시가 큰 폭의 등락을 거듭하는 가운데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매 움직임이 시장의 단기 방향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변수로 부각되고 있다는 평가다.
주가는 기본적으로 기업의 이익 창출 능력과 성장 가능성 등 기초체력(펀더멘털)을 반영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주식을 사려는 자금과 팔려는 자금의 힘겨루기에 따라 움직인다. 기업 실적이 아무리 좋아도 매도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주가가 하락할 수 있고, 반대로 기업 가치에 별다른 변화가 없어도 매수세가 몰리면 주가가 상승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시장에서는 최근 이러한 수급의 영향력이 더욱 두드러지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국인이 매수에 나설 때와 매도에 나설 때 지수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기업의 실적이나 밸류에이션뿐 아니라 외국인 자금의 유입·유출 흐름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황수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최근 국내 증시 상황에 대해 기업의 펀더멘털보다 투자심리와 수급이 주가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개인과 기관투자자의 수급이 뚜렷한 시장 방향을 형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외국인 자금의 움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황 연구원은 “주가는 펀더멘털보다는 투자심리와 수급에 좌우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외국인 수급이 추세적으로 들어오는지 관찰한 이후 방향을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외국인 수급과 코스피 등락 방향의 일치율이 높아졌다는 사실만으로 외국인 매매가 지수 움직임을 결정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번 분석은 외국인의 매매와 코스피 등락이 같은 날 얼마나 자주 같은 방향을 나타냈는지 확인한 것으로, 인과관계나 향후 지수 예측력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 한국거래소 일별 자료를 토대로 2026년 4월 21일~10월 21일의 총 122거래일을 분석했다. 표시 등락률이 0.00%(보합)인 거래일은 전체 거래일에 포함하되 상승일과 하락일 어느 쪽에도 포함하지 않았다.
th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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