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희준 동아대 교수의 글은 읽고 나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재치가 넘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문체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스포츠현상을 좀 삐딱하게 아니, 그 속내를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파고들기 때문이다. 월드컵 광풍에 대한 경고, 금메달 지상주의 비판, 스포츠 메가 이벤트 유치의 허상, 만연화된 체육계 폭력 등 그의 지적은 매번 날카롭다. <어퍼컷>은 그가 <프레시안>에 기고한 칼럼 ‘정희준의 어퍼컷’을 단행본으로 엮어낸 것이다. 스포츠 사회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필독서에 가깝고, 그냥 교양 차원에서 읽어도 제법 알차다. # 이 칼럼의 제목인 ‘촛불 정국, 보이지 않는 스타들’은 그 시제가 2016년 12월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인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때 얘기다. 정희준 교수가 그 즈음에 운동선수들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쓴 글의 제목이다(이 칼럼 제목으로 그대로 차용했다). 정 교수의 당시 글은 이렇게 마치고 있다. ‘우리나라의 스포츠는 바뀌어야 한다. 더 자유로워야 하고 더 발랄해져야 한다. 그리고 세상을 둘러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소신과 신념에 따른 자신의 발언을 해야 한다. 조직이 요구하는 ‘금기’를 깨고 나와야 한다. 한국 사회의 미래에 관심을 갖는 박지성, 친구들과 함께 청소년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김연아, 사회적 약자에 대해 발언하는 박태환, 물대포에 맞서 시위대의 선봉에 선 최홍만…. 이런 그림을 기대한다면 무리일까.’# 그의 글을 조금만 더 보자. ‘작금의 촛불 정국엔 많은 유명인들이 함께 하고 있다. 많은 가수, 배우, 영화인 들이 자신의 블로그에 광우병 쇠고기 문제에 대한 의견을 올리기도 하고, 촛불 문화제에 참가해 자신들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중략) 그러나 체육인, 스포츠 스타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선수도 없고, 감독도 없다. 너무 바쁘셔서들 그런가. 너무 귀한 몸이라서 그런가. 원래 이쪽이 보수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단 한 명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가. ‘스타’ 중에서도 ‘스포츠 스타’는 예외로 쳐야 하는 것인가. 체육인들은 언제까지 남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을 즐기기만 할 것인가.’# 신기하리만큼 8년 전의 글을 가져다 오늘에 들이대도 조사 하나 고칠 게 없다. 대통령이 바뀌고 8년이 지났다. 그때와는 또 다른 이유로 촛불이 켜졌다. 그리고 그 힘에 정치권이 화들짝 놀라 대통령이 임기를 못 채우게 됐다. ‘혁명’ 같은 단어를 쓰지 않아도 세계 정치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은 결코 과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번에는 ‘스포츠’가 주무대였다. 대통령을 얼굴 마담으로 내세운 최순실 일당이 스포츠를 재테크 수단과 자녀 진학의 방도로 활용한 것이다. 화무십일홍도 모른 채 권력의 단 맛에 취했던 문체부 차관은 박태환, 김연아도 우습게 봤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그런데도 8년 전처럼 우리네 스포츠 스타들은 촛불과 거리를 두고 있다.
# 스포츠가 정치색을 띠면 안 된다고? 웃기는 소리다. 스포츠는 문화의 한 영역이고, 우리가 발딛고 살아가는 이 땅의 현실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많은 국민들이 좋아하는 프로야구단은 재벌기업들이 운영하는 까닭에 어쨌든 경제영역에 속하고, 역사적으로도 여러 위정자들이 체육단체장을 맡았다. 아주 고약한 예로, 정몽준이라는 정치인이 2002 한일월드컵 열기를 앞세워 유력한 대선주자가 된 웃지못할 사건도 있었다. 대한체육회장이나,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수장도 정치권력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치는 필요할 때마다 스포츠를 악용하는데, 스포츠는 무조건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고? 체육인도 필요할 때는 적극적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출해야 한다. 체육인에 앞서 국민이기 때문이다. # 2016년 유명을 달리한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미국)는 20세기 최고의 스포츠 스타로 꼽히는데, 정치색이 확실했다. 베트남전쟁에 반대해 징집을 거부했고, 이 때문에 재판을 받았다(최종 무죄). 이 과정에서 3년반이나 링에 오르지 못했지만, 반전 의식이 확산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래서 더 위대한 스포츠영웅이 됐다. 2002년 지네딘 지단(현 레알마드리드 감독)은 극우파인 장 마리 르펜이 대통령선거에서 1위로 결선투표에 오르자 ‘르펜이 당선된다면 2002년 월드컵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가까이는 미국프로농구(NBA)의 최고스타 르브론 제임스가 지난 미국대통령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 왜들 이리 겁이 많은가? 공무원 교사에 초등학생까지. 심지어 가족 단위로 촛불집회에 참석한다. 아파트 베란다에 보란 듯이 ‘대통령 퇴진’ 플래카드를 내걸기도 한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가수들이 출연료도 받지 않고 광화문에서 노래를 하겠다고 나선다. 문화예술인들도 자신들의 재능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정치적 의사를 표현했다고 탄압받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내가 잃을 게 있는가 재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스포츠 스타들은 조용하다. 국보급투수, 국보급센터, 농구대통령, 배구 월드스타, 국민마라토너, 국민여동생, 골프여왕, 4전5기의 신화 등은 광화문 촛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자기 의사가 있다면 제발 얘기 좀 하자. 지금은 정치권력에 혼날까봐 담벼락에 대고 욕을 하는 것으로 자위하는 시대는 확실히 아니니 말이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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