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해준 기자]국회에서 통과된 내년 예산안이 아직 집행도 되지 않았는데 추가경정(추경) 예산안 편성론이 비등하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이 적극 요청하고, 정부도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추경 편성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이는 그만큼 경기가 예상보다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지만, 정부의 취약한 경기예측 및 대응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란 지적이 많다. 정책적 대안을 고민하기보다 돈을 풀어 성장률을 끌어올리려는 박근혜 정부 경제팀의 근시안과 무책임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기정사실화하는 추경론=추경 편성론은 최근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2일 국회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내년 성장률이) 2% 초중반이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면 추경을 한번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 성장률이 2%를 밑돌 가능성에 대해 “매우 낮다고 본다”며 “현재 3.0%인 정부의 내년성장률 전망치를 2%대 초반까지 낮추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추경 시점에 대해선 “내년 1분기가 지나봐야 그걸 보고 판단하려고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23일 열린 정부와 새누리당의 ‘긴급 민생경제현안 종합점검회의’에선 2월 추경 편성론까지 오는 등 한걸음 더 나갔다.
이현재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예산 조기집행만 갖고는 내년 경제전망이 썩 희망적이지 않다”면서 “세수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고 경제는 타이밍이 중요한 만큼 추경도 내년 2월까지 편성해달라고 당에서 강력히 요청했고, 정부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기재부는 당의 요청과 대내외 경제상황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해 결정할 것이라며 다소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러한 ‘성장률 2% 초중반 시 추경론’과 ‘2월 추경론’을 감안할 때 빠르면 내년 1분기 추경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대통령 탄핵 이후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은 상태에서 정치권도 경기부양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걸림돌도 적은 상태다.
▶취약한 경기예측ㆍ대응능력 입증=이는 경제여건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이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세계경제의 회복세가 미약하고 미국의 트럼프 신행정부 출범과 보호무역주의 바람으로 낙관하기 힘들다. 기업들은 투자를 줄이고 있고, 가계는 1300조원의 눈덩이 부채와 실질소득의 감소,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지갑을 닫고 있다. 미 금리인상 파고도 만만찮다.
일부에서는 4분기 성장률이 전기대비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으로 보고 있고, 내년 성장률이 올해보다 낮은 2%대 초중반에 머물 것이란 전망이 많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도 성장률이 2.4%에 머물 것으로 예상했고, LG경제연구원과 한국경제연구원은 2.2%로 예측했다. 대부분의 해외 투자은행(IB)들도 2%대 초반을 내다보고 있고, 1%대로 전망하는 곳도 있다.
사실 이런 전망은 이미 올 하반기부터 제기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내년도 성장률 3%를 고집하며 예산안을 편성한 다음, 내년도 예산을 집행하기도 전에 추경론을 꺼내들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경제상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본 결과라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기업투자나 민간소비를 살릴 근본적인 대책을 미룬 채 상대적으로 손쉬운 재정확대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이런 현상이 심화돼 이러다가는 일본식 장기불황의 덫에 걸릴 것이란 우려를 키우고 있다.
▶계속 추경에 의존하는 박근혜 정부=추경은 국회에서 확정된 예산안을 정부가 집행하는 과정에 새로운 변수가 생겨 기존 예산안에 변경을 가할 필요가 있을 때 추가로 편성하는 예산을 말한다. 하지만 추경이 남발돼 재정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재정법에 그 요건을 ‘전쟁이나 대규모 자연재해, 경기침체, 대량실업 등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법령에 따라 국가가 지급하여야 하는 지출이 발생하거나 증가하는 경우’에 한정하도록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4년 동안 정부는 2014년을 제외하고 3년 동안 추경을 편성했다. 2013년에는 경기침체와 민생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2015년에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충격 때문에, 올해는 경기위축과 대량실업에 대응하기 위해 편성했다.
하지만 막대한 재정투입에도 불구하고 경기침체를 막지 못했다. 오히려 재정적자와 가계부채의 누적 등 후유증만 남겼다. 경제환경의 구조적 변화에 대응하고 경제체질을 바꾸기 위한 구조개혁이나 기업ㆍ산업 구조조정, 가계소득 증대방안 등을 미루고,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임기응변식 처방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의 추경으로 경제의 자생력만 약화됐다.
▶단기부양책 의존하면 일본식 장기불황=지금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성장률이 2%대 중후반이면 괜찮고 초중반이면 안되는 뚜렷한 이유도 찾기 어렵다. 내년 1분기에 예산의 30%를 투입하고 추경까지 동원한다고 경제가 나아질 가능성도 많지 않다.
20년 전 일본은 경제체질 변화를 위한 구조개혁을 미루고 임기응변식 경기부양책을 남발하다 결국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했고, 그래도 경제가 살아나지 않자 급격한 우경화의 길로 접어들어 이젠 동북아시아의 갈등을 유발하는 국가가 됐다. 정치적인 부문을 제외한다면 한국경제는 20년 전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이제 그 고리를 끊고, 근본적인 대안을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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