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최정호 기자]LG의 탈퇴 통보를 시작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사실상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 강도높은 쇄신을 통해 살아남기 위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전경련에게 LG그룹을 시작으로 삼성 등주요 기업의 탈퇴가 예고돼 있고, 공공기관 및 금융사가 동참하고 있는 탈퇴 러시는 큰 충격이다.
전경련은 내년 2월 정기총회에서 쇄신안을 확정짓고 새 출발을 하겠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전경련의 목을 쥐고 있는 회원사들의 반응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지난 15일 30대 그룹을 상대로 마련한 간담회가 참석률 저조를 이유로 제대로 된 의견수렴이나 설명조차 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난 장면은 전경련의 우울한 앞날을 보여주는 단적인 그림이다. 내년 1월 예정된 정기 회장단 회의도 개최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지난 11월처럼 참석자가 저조하다는 이유로 무산될 공산이 크다.
재계 한 관계자는 “쇄신 대상인 이승철 상근부회장이 전경련의 쇄신안을 주도하고 있는데, 여기서부터 회원사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지금과 같은 형태로는 더 이상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일단 기존 틀을 허물고 난 뒤 쇄신이든 변신이든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해체 자체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하지만 정부와 주요 그룹 간 연결고리에 대한 필요성, 또 대체할 만한 조직의 부재 등을 이유로 전경련의 존속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탈퇴 선언으로 빛이 바랬지만 “전경련을 미국 헤리티지재단처럼 싱크탱크로 운영하고 재계 친목 단체로 남아야 한다”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제시한 청사진이 주목받는 이유다.
헤리티지 재단은 1973년 만들어진 공공정책 연구 기관이다. 자유기업, 제한된 정부, 개인의 자유, 전통적인 미국의 가치 같은 보수적인 기업들의 입장을 주로 대변하고 있다. 지금도 약 200여명의 전문 연구원들이 미국 이익 방어와 복지 축소, 기업 활동 보장 등을 골자로 하는 다양한 논리를 쏟아내고 있다. 레이건 정부의 스타워즈 계획, 나토 중심의 서방 동맹 정책 등이 헤리티지 재단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전경련이 헤리티지 재단 같은 연구기관으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 재정 투명성 강화와 독립성의 확보다. 실제 헤리티지 재단은 운영에 필요한 돈 대부분을 자발적인 기부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매년 지출액보다 많이 들어오는 기부금을 투명하게 공개해 더 많은 기부금이 자발적으로 들어오는 선순환 시스템 구축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전경련은 수입 대부분을 기업, 특히 몇몇 소수 그룹의 회비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렇게 모인 돈이 또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도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전경련을 위기에 몰아넣은 최순실 사태도 결국 투명성의 부재라는 빈틈이 만든 자가당착식 결과물인 셈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미 전경련이 한국경제연구원 같은 정책 평가 및 제안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와중에, 전경련이 헤리티지 재단 식으로 쇄신하겠다는 말은 현 단계에서 크게 설득력을 얻기 쉽지 않다”며 “정부와 정치권에 기업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역활을 더 이상 수행하기 힘들다면, 유사 단체와 통합을 포함한 전경련의 해체를 고민하는게 더 빠른 길”이라고 강조했다.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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