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꼬르동 블루 숙명 제과제빵 지원자 해마다 늘어 -직업교육 아닌 순수한 디저트 열정으로 시작 -17년 직장생활 정리하고 ‘잼 전문가’ 된 변혜원 씨

[헤럴드경제=김지윤 기자] 한국인은 밥심이라고 했건만, 전국민에게 해당되진 않는듯 하다. 갈수록 ‘빵심’으로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 이들은 빵과 디저트를 먹을 때 인생의 행복을 논하고 빵을 먹으러 전국을 누비며,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디저트 인생을 시작하기도 한다.

12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프랑스 제일의 요리학교 ‘르꼬르동블루’의 한국 캠퍼스에도 이러한 이들이 있다.

20개국 35개 캠퍼스를 운영하고 있는 르 꼬르동 블루는 매 년 약 2만 명이 넘는 외신산업 전문가를 길러내는 곳이다. 2002년 숙명여대와 파트너십을 맺으며 첫 입학생을 받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제과와 제빵에 과정에 학생들의 지원 열기가 뜨거워졌다.

르꼬르동블루 숙명 한 관계자에 따르면 “과거에는 직업교육 차원에서의 지원자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순수하게 빵과 디저트를 좋아해 심도있는 기술을 익히려고 오는 지원자가 늘었다”고 했다.

르 꼬르동 블루는 최고의 요리학교답게 학비 또한 만만치않다. 총 3단계로 이뤄진 제과 디플로마 과정은 2195만원(단계별 금액), 2단계 과정의 제빵 디플로마 과정은1505만원(단계별 금액)에 이른다. 상당한 학비에도 불구하고 입학을 원하는 이들이 줄을 선다. 제과 과정은 6~9개월(대기자 80명 이상), 제빵은 3개월~6개월(대기자 40명 이상)의 대기 기간이 생길 정도다.

게임업계 전문가에서 잼 전문가로 ‘인생2막’= 변혜원(39) 씨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리니지’를 만드는 엔씨소프트에서 무려 13년을, CJ E&M 자회사로 편입된 넷마블에서 4년을 근무했다. 서른 살이 될 무렵 그녀는 오랜 직장생활에 지쳐 취미에 빠졌다고 한다. 그 중 하나가 홈베이킹이었다. 매일 퇴근 후 집에와 오븐앞에서 빵과 쿠키를 구워댔다.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모두 ‘맛있다’ 극찬했다. 이것도 반복되니 ‘정말 이게 맛있는 건가’ ‘이렇게 하는 게 맞나’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빵을 배워보자 싶어 르 꼬르동 블루에 입학했다. 수많은 수업중 그녀가 꽂힌 과목은 단 한번 뿐이었던 ‘잼’ 수업. 이후 그녀는 잼 만드는 직장인이 됐다. 그러다 잼 정말로 잼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딱 한번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해서 변 씨는 ‘마약같은 월급’을 버리고 3년 전 퇴사를 결심했다. 이후 ‘마녀잼’이라는 이름으로 상표권을 등록하고 양천구 신정동에 작은 가게를 냈다.

변 씨는 자신이 만든 잼을 두고 ‘수제잼의 혁명’이라 자부한다. 설탕과 올리고당, 인공펙틴을 사용하지 않고 천연과일 재료로만 잼을 만들기 때문. “당ㆍ산ㆍ펙틴은 잼의 3요소에요. 이 3가지를 일정 비율로 섞으면 겔(gel)화가 진행돼 잼이 되죠. 잼은 ‘너무 달다’ ‘몸에 좋지 않다’는 편견이 많아 건강한 잼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숱한 실험 끝에 인공 첨가물 없이도 과일이 가진 순수 당과 펙틴, 신선한 레몬 3가지만 있으면 충분히 잼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아냈죠”

변 씨의 새 레시피는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급 이었다. 설탕과 인공첨가물을 뺐으니 몸에 덜 미안(?)한 데다가 제철과일로 매일 만드니 신선도는 말할 것도 없다. 딸기잼 일색이던 기존 잼을 탈피, 여러 과일을 섞은 블렌딩 잼도 개발했다. 루바브(대황)와 사과를 맥주에 숙성시킨 ‘맥주 루바브잼’은 그녀의 야심작이다.

마녀잼 고객들은 “깔끔한 단맛, 살아있는 과육과 풍미가 남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식빵 한줄 순삭(순간삭제)’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귀여운 경고도 덧붙인다.

변 씨의 잼은 스콘, 바게트, 깜빠뉴 같은 밋밋한 식사빵을 훌륭한 티푸드로 완성시켜 준다. 올리브유나 요거트에 섞어 샐러드 드레싱으로 활용하거나, 플레인 요거트에 섞어 먹기도 좋다.

“어느집 냉장고에나 고추장, 된장이 있듯이 다양하고 개성있는 잼을 두루 즐기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프랑스 ‘잼의 여왕’이라 불리는 크리스틴 페흐베흐처럼 잼 전문가가 돼 전세계 사람들이 제가 만든 잼을 즐기는 게 꿈입니다”

그녀는 6월이 되면 프랑스로 떠난다. 프랑스 공립 제과학교 ENSP(Ecole National Superieur de Patisserie)의 잼 전문 과정을 수강하기 위해서다. 일찌감치 현지 통역자 섭외도 끝냈다. 장사를 한 지는 이제 겨우 2년 남짓. ‘잼으로 번 돈 다 쓰고 오는 것 아니느냐’는 농에도 ‘아무렴 어떠냐’는듯 껄껄 웃는다.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은 제게도 큰 도전이에요.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실패했을 때의 실망감이 무한 반복되는 지루한 작업이죠.하지만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과 자신감은 그와 비교할 수 없어요. 결국 이 모든 것은 ‘내가 진짜 재밌어 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해보겠다는 단순한 마음에서 시작된 것 같아요. 편한 길도 좋지만, 정작 가고 싶은 길은 따로 있잖아요. 안정된 직장을 때려치는 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일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정말 좋아하는 일만 찾을 수 있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