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예찬-조선지도 500년 공간’展 10월 2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서 20여기관·개인 소장 지도 등 260점 조선방역지도 등 국보·보물 9점도 출품 ‘대동여지도’ 원본 22권 감상 기회
#어려서부터 지도에 관심이 많던 김정호는 모진 시련 속에서도 오로지 자신의 노력만으로 백두산에 여덟 번 오르고 전국을 세 번 답사해 ‘대동여지도’를 제작해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 대한 보상은 커녕 국가의 기밀인 지리정보를 유출했다는 죄로 흥선대원군의 노여움을 샀고 결국 옥에 갇혔다. 그리고 그의 지도는 모두 압수됐다. (1934년, 조선총독부 출간 교과서 ‘조선어독본’ 요약)
대동여지도(1861년)에 관한 일화 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다. 잘 알려진 이 일화는 사실 어떠한 역사적 근거도 찾아볼 수 없는 ‘지어낸 이야기’에 가깝다. 일제는 조선의 지도를 이렇게 폄훼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조선의 집권세력인 왕실을 무능하고, 타락한 것으로 묘사해 ‘일제의 지배를 받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심기위해 퍼트린 ‘가짜뉴스’다.
조선시대 선조들이 만든 지도를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오는 10월 28일까지 특별전 ‘지도예찬-조선지도 500년, 공간ㆍ시간ㆍ인간의 이야기’를 개최한다. 조선시대 지도를 주제로 최초의 대규모 종합전시로 ‘동국대지도’ (보물 제1582호), ‘대동여지도’ 목판(보물 제1581호), ‘조선방역지도’(국보 제248호)등 국내 20여 기관과 개인 소장가의 중요 지도와 지리지 260점이 나왔다.
조선의 지도라고 하면 대동여지도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정작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저 실측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지도와 비교해도 꽤 정교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대동여지도는 지리ㆍ인문ㆍ국방ㆍ생산정보를 총망라한 일종의 결정판이다. 지도의 물길은 강폭이 넓은 하구에서 쌍선으로 시작해 상류로 갈수록 점점 폭이 좁아지다가 어느 지점에서 단선으로 바뀐다.
전문가들은 쌍선으로 표시된 지점이 하구에서 출발한 범선이 운항할 수 있는 한계지점으로 추정한다. 뿐만 아니라 전국에 산재하는 진과 보, 산성, 봉수 등 군사시설을 꼼꼼히 표기했다. 당시 쓰이지 않던 옛 진과 보, 산성의 위치도 기재해 만일의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했다. 더불어 조선팔도 행정구역과 국방시설의 숫자를 정리, 19세기 조선의 상황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같은 대동여지도는 김정호라는 개인의 천재적 재능에 의해 어느 한순간 탄생한 것이 아니다. 당연하게도, 대동여지도 이전에도 조선은 지도의 나라였다.
중앙집권 국가를 지향했던 조선왕조는 통치를 위해 정확한 지식을 구축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성종대 완성한 ‘동국여지승람’, 중종대 간행한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 18세기에 들어서면 실학자 정상기가 백리척(백 리 단위의 축척)을 처음 표기한 지도 ‘동국대지도’가 나타난다. 지도와 지리지에는 인구와 호구, 토지, 세금, 병력통계를 포함해 행정, 경제, 국방정보, 효자와 열녀, 충신 등 인물정보와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한 시까지 한 고장의 과거와 현재가 모두 담겼다.
작은 지도 하나로 세상 모든 정보를 담고, 이상향을 꿈꿨던 선조들의 세계관이 한 눈에 보인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1전시실 가장 끝에 자리한 대동여지도다. 원본 전체를 감상 할 수 있도록 22권의 책을 펼쳐놓았다.
이한빛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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