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에 근무할 때 현지 부동산 중개업자로부터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집을 구하러 온 동양인이 동네를 선택하는 것을 보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동포 옆집을 원하면 중국인, 동포와 다른 동네를 찾으면 일본인, 동포가 사는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을 원하면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뉴욕 한인타운의 교포 상점이 자꾸 줄어들고 그 자리를 중국인이 채운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미국 부동산 중개업자의 말이 생각났다.

한국 교민들은 그동안 열심히 일해 돈은 좀 벌었지만 혼자 힘으로 건물을 살 수는 없기에 오르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쫓겨나다시피 하고 있다. 반면 중국인들은 동포들끼리 힘을 합쳐 건물을 통째로 사버리기 때문에 쫓겨나기는커녕 그곳 상권을 장악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전자제품박람회(CES)는 주요 트렌드로 ‘매직(MAGIC)’을 제시했다.

이동성(Mobility), 인공지능(AI), 5세대 이동통신(5G), 지능로봇(Intelligent Robot), 협력(Cooperation)의 머릿글자를 딴 것이다. 이 가운데 협력이 유독 눈에 띤다. 융합과 초연결 세상에서 단일 기술, 단일 제품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올해 CES에 삼성과 애플, LG와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이 협업하는 방식으로 참가한 것도 이런 트렌드를 반영한다.

CES에 참가한 155개국, 4500개 기업 가운데 338개가 한국 기업이고 이 중 3분의 1은 스타트업이었다.

아이디어가 좋고 기술력도 뛰어나 외국 바이어와 투자자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하기에는 힘이 부칠 수밖에 없다. 대부분 소수의 개발 엔지니어나 마케팅 경험이 없는 이공계 출신이 회사를 꾸리다 보니 기술과 제품은 알지만 유통과 시장은 모르기 때문이다. 유망 스타트업 제품이 주력 수출상품으로 성장하려면 생산과 해외시장 경험이 풍부한 수출 중견기업이나 대기업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협력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필자가 지난 26년간 무역지원 업무를 하면서 느끼는 가장 어려운 부분이 협력과 협업이다. 같은 조직 안에서도 힘을 합치기가 쉽지 않은데 다른 기업과의 협력이 쉬울 리 없다.

우리 스타트업이 가장 원하는 것은 글로벌 대기업과의 만남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무역협회가 개최한 독일의 글로벌 스킨케어 기업 바이어스도프, 자동차 기업 BMW와 국내 스타트업을 연결하는 행사는 의미가 있다. 물론 우리 대기업과의 교류도 필요하다. 지난해 무역협회가 GS, LG와 스타트업들을 매칭해준 좋은 사례도 있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의 시선은 여전히 해외로 향한 듯하다.

스타트업과 우리 대기업의 협력이 활성화되려면 무엇보다 상호 신뢰가 필요하다. 대기업 입장에서 좋은 스타트업을 발굴해 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은 중요한 사회적 책임(CSR) 활동이기도 하다. 두 당사자 사이에 신뢰관계가 미흡하다면 무역협회 같은 믿을 만한 중개자가 나서는 것도 방법이다. 대기업의 오픈 이노베이션을 북돋우는 데 걸림돌이 되는 법과 제도 개선은 정부 몫이다.

중국인들에게 넘어가고 있는 뉴욕의 동포 상권은 언제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러다가 한인타운이란 이름조차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골목 상권이든 첨단 산업 분야든 답은 협력에 있다. 연초부터 정부가 기업인과 만나는 기회를 늘리면서 혁신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런 노력이 결실을 맺으려면 스타트업과 대기업 간 협력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동기 한국무역협회 혁신성장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