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배문숙 기자]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해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규제에 이어 수출 우대국 명단인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한국 경제는 대형 악재를 만났다.
일본 수출도 올해 들어 줄곧 ‘마이너스’ 상황이라는 점에서 우리와 교역이 감소할 경우, 하락세가 더욱 가팔라질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양국 갈등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이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의 수출통제를 강화한 이후 반도체 가격은 20% 이상 급등했다.
2일 정부와 주요 경제전망 기관에 따르면 지난달 초부터 시작된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악영향은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달 말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8월 전망치는 80.7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한창이었던 2009년 3월(76.1)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7월 수출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1.0% 줄어 8개월 연속 감소했다. 품목별로 보면 반도체(-28.1%), 석유화학(-12.4%), 석유제품(-10.5%) 등 주력 품목은 단가가 떨어지면서 수출 실적이 부진했다.
7월 대일 수출은 0.3% 감소하는 데 그쳤지만, 수입은 일본의 수출규제 대상인 부품·소재·장비 수입이 줄어드는 등의 영향으로 9.4% 줄어들었다.
6월 산업생산은 수출 감소 장기화 등의 영향으로 2개월 연속 줄고 소비마저 마이너스로 돌아선 가운데, 정부는 이달부터 일본 수출규제에 따른 여파가 산업생산지표에 반영되면 더욱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이 이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주재로 연 각의(국무회의)에서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함에 따라 악영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영국 등 27개국이 포함된 백색국가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조치가 시행되면 일본 기업이 한국으로 수출할 때 거의 모든 품목에서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로 인해 반도체·소재뿐만 아니라 국내 산업 전반에 광범위한 악영향이 예상된다.
이미 경제 전망기관들은 일본 수출규제 영향 등에 대해 우려하면서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하향조정하고 있다.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이 2%에도 못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늘어나고 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국내외 43개 기관의 올해 한국경제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지난달 기준 2.1%로 6월(2.2%)보다 0.1%포인트 떨어졌다. 국내외 43개 기관 중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이 2%에 못 미칠 것으로 전망하는 곳은 스탠다드차타드(1.0%), IHS마켓(1.4%), ING그룹(1.4%), 노무라증권(1.8%), 모건스탠리(1.8%), BoA메릴린치(1.9%) 등 10곳으로 늘어났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 무역갈등이 우리나라의 투자와 성장에 영향을 미쳐 하방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무디스는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등 한국 기술기업 신용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피치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 규제가 글로벌 첨단 기술시장에 불확실성을 더한다며, 올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2.0%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한국의 반도체 생산이 10% 줄 경우 GDP는0.4% 감소하고 연간 경상흑자는 100억 달러(약 11조7820억원)가 줄어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KB증권은 한국과 일본 간 무역갈등이 심화하면 한국 경제성장률이 2%를 하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한 일본의 조치는 한국뿐 아니라 자국 기업과 경제에도 치명타를 입힐 전망이다. 일본은 수교 이후 한 번도 한국과의 교역에서 적자를 낸 적이 없다. 한국은 일본의 3위 수출국이자 흑자국이다.
세계 경제가 받는 타격도 불가피하다. 각국이 원자재와 중간재, 최종재를 수입·수출하며 촘촘한 글로벌 가치사슬을 형성하면서 무역분쟁이 당사국만의 문제가 아니게 됐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미국과 중국은 물론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전 세계 무역이 모두 위축된 것이 이 같은 상황을 잘 보여준다.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진경제실장은 “한국의 일본 의존도가 높은 만큼 일본 기업에도 한국은 중요한 고객”이라며 “한국에 부품·소재를 수출하는 기업은 물론 역으로 파나소닉·소니 등 한국 반도체 수입하는 기업도 타격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또 “글로벌 가치사슬이 촘촘하게 연결된 만큼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모든 국가에 영향을 미친다”며 “중국조차도 이득을 본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oskymoon@hera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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