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서울 세종로 일대엔 중구청이 내건 ‘노재팬(NO Japan)’ 깃발이 펄럭였다. 일본 여행 거부와 제품 불매는 한 달 새 익숙한 일이었지만 새삼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일본 관광객을 비롯해 한국에서 일하는 일본인들이 불쾌할 것이란 우려에서다. 가열된 불매운동 속에도 한일 간 민간 교류가 틀어져선 안된다는 인식이 컸다.
지난 7월 시작된 일본 불매운동의 도화선은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였다. 한국 사법부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아베 정권이 경제적 보복을 가한 것이다. 불매운동의 위력은 컸다. 올 초만 해도 유니클로 옷, 무인양품의 문구, 아사히의 맥주를 많이 구매했던 국내 소비자들이 돌아서고 있다. 불과 한 달 새 일본 브랜드 매장이 비었고, 일본 맥주 소비는 반토막이 났다.
실제로 불매운동 참여 비율은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 1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응답이 64.4%였다. 이는 계속해서 오른 수치로, 지난달 10일에 진행된 1차 조사에선 48%였으나 2·3차 조사에서 각각 54.6%, 62.8%를 기록했다.
그러나 불매운동의 확산 속에 우려의 목소리도 섞인다. ‘친일·매국·죽창가’의 논리로 소비자 선택을 부정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일본을 무조건 반대하는 ‘노재팬’이 아니라 일본 정권을 규탄하는 ‘노아베’가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일본 수입 차주의 엠블럼을 훼손하는 사례나, 유니클로 매장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찍어 온라인에 공유하는 ‘유니클로 단속반’ 등 과격한 일부 불매운동 때문에 이런 우려의 목소리들도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동안 한·일간 첨예한 역사적 갈등관계에도 양국 관계를 지탱해 온 경제·민간 교류가 막혀버리면 정치적 합의는 더욱 요원해진다. 일본과 관련된 건 무조건 사지도 먹지도 말자는 일방적 분위기 속에서 소비자들은 자기 검열을 한다. 일본 제품이나 문화를 소비하고도 알리지 않는 이른바 ‘샤이 재팬’ 현상에서 소비자들은 침묵할 뿐이다. 사실 샤이 재팬과 불매운동은 뚜렷한 경계가 없다. 샤이재팬 속에도 불매운동에 일부 동참하더라도 극단적 반일감정과는 분리해, 일본과의 원만한 관계를 추구하는 이들이 많다.
중구청 홈페이지에 이어진 노재팬 깃발 설치 중단 청원글이 그렇다. 이들은 불매운동은 민간이 자발적으로 해야 하며,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은 다르다고 판단했다. 중구청은 바로 깃발을 철거하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불필요한 갈등 상황을 막은 것이다.
반면 일본산 원자재와 지분 구조를 샅샅이 따지는 불매운동에 대해선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과거보다 더 진화되고 조직적인 불매운동이긴 하지만 정작 피해를 보는 건 애꿎은 국내 기업과 협력 업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분업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속에 국내 기업의 수입 원료 사용은 피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아울러 일본과 단순 지분 관계만 있다고 해서 한국 정부에 세금을 내고 한국인을 고용하면서 뿌리내린 기업을 무조건 일본기업으로 매도하는 것은 과한 측면이 있다.
기자는 최근 한 지인으로부터 특정 기업의 상품을 ‘갖다 버리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면서 절대 먹지 말아야 할 기업 목록도 보냈는데, 우리나라 식품 기업 대부분이 포함됐다. 일본산 원재료를 쓰거나 일본과 지분 관계에 있다는 이유였다.
일식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도 애먼 피해를 보고 있다. 일본 상호명인 간판이라도 바꿔야 하나 고심한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서울 여의도의 한 일식집에서 오찬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때아닌 ‘사케 논쟁’이 정치권에 불붙었다. 사실 그가 마신 것은 국내산 청주였지만 이번 논란으로 일식집을 운영하는 점주들은 또 한번 시름에 잠겼을 것이다.
최근 일본 정부 내에선 수출규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9일 마이니치신문이 정부 관계자를 인용한 보도로, ‘예상보다 소란이 커졌으며 오판을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본의 경제 보복이 쉽게 사그라들진 않겠지만 치킨게임으로 흐르는 양극의 극단적 대립이 불러오는 피해와 부작용이 크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감정적 대립이 격해지면서 한·일 모두 피해자가되는 ‘루즈-루즈(lose-lose)’ 게임이 돼서는 안된다. 샤이 재팬이 다시 양지로 나올 날, 일본과의 새로운 관계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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