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7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9차 국민연금 기금 운용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7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9차 국민연금 기금 운용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국민연금이 경영계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민간기업의 정관 변경, 이사 선·해임 등 경영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확정지었다. 주주권 행사의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시장에 예측 가능성을 부여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경영 개입과 지배구조 간섭이 기업들의 경영 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국민연금 최고 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이하 기금위)는 지는 27일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 목적의 주주권 행사 대상 기업과 범위, 절차 등을 규정한 가이드라인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수탁자책임에 관한 원칙(스튜어드십코드)을 도입했고, 이에 의거해 올해 2월 일부 기업에 대한 적극적 주주활동을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적극적 주주활동의 세부 기준, 절차 등을 규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성이 제기됐고, 수차례 의견 수렴과 수정 과정을 거쳐 이번 최종안이 확정 의결됐다.

▶개선여지 없는 기업은 주주제안 사전 절차 축소=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 활동 대상이 되는 것은 크게 '중점관리사안'과 '예상치 못한 우려 사안'으로 나뉜다. 중점관리사안에는 ▷합리적이지 않은 배당정책 수립 ▷적정하지 않은 임원 보수 한도 ▷법령상 위반(횡령, 배임, 부당지원행위, 경영진의 사익편취) 우려로 기업가치 훼손 및 주주권익이 침해되는 사안 ▷국민연금이 지속적으로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음에도 개선이 없는 사안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정기 평가결과가 하락한 사안 등이 포함된다. '예상하지 못한 우려 사안'에는 검찰, 경찰과 같은 국가기관의 수사가 시작되는 등의 이슈가 해당된다.

국민연금은 '중점관리사안'에 해당되는 기업에 대해, 비공개 대화 대상기업 선정→비공개 중점관리기업 선정→공개 중점관리기업 선정 등 세 단계를 거친 후 주주제안에 나서게 된다. '예상하지 못한 우려 사안'에 해당될 경우 비공개 대화 대상기업 선정 절차 이후 바로 주주제안이 가능하다. 각 절차를 1년 단위로 추진한 뒤 개선이 없다고 판단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식인데, 다만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등 개선 여지가 없는 경우 1년 이내에 다음 단계로 이행할 수 있도록 했다.

주주제안 직전 단계에서도 개선 여지가 없다는 판단이 내려질 경우, 국민연금은 해당기업의 산업적 특성이나 기업 여건, 주주제안의 실효성, 비용효과성, 시장에 대한 상징적 의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주주 제안에 나서게 된다.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주주제안 추진 여부 및 주주제안 내용을 검토해 기금위에 보고하면 기금위가 검토 내용을 바탕으로 최종 결정을 내린다. 자본시장법 상 '경영참여'에 해당하는 주주제안이 결정되면 기금운용본부는 자본시장법상 공시 위반 방지를 위해 주식보유 목적을 변경해야 한다. 특히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에 대해서는 단기매매차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식보유 목적 변경을 의결한 시점부터 매매를 정지한다.

▶경영계 반발 여전…"기업 길들이기 목적"=가이드라인은 의결됐지만, 경영계는 여전히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우선 주주활동의 대상이 되는 '예상하지 못한 우려 사안'의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기금위가 정부로부터 독립성이 취약하고 노동계와 시민단체의 영향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만큼, 모호한 기준을 이용해 기업 경영에 간섭하려는 시도가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본부장은 "'국민연금 리스크'는 기업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된다"며 "보건복지부는 내년도 주총 시즌 전에 보완 장치를 반드시 마련하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이사해임과 집중투표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임, 위임장 경쟁 등으로 이어지는 주주제안의 경우 특별결의와 같은 통제장치를 둬야 한다고 제언했다.

기금위 또한 최종 의결된 가이드라인이 경영계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 우선 시행하되 추가로 개선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그간 장기간에 걸쳐서 주주권 행사, 스튜어드십코드에 대해 논의해 왔기 때문에, 비록 완벽하진 않더라도 지금 단계에서는 일단 마무리짓는 방향으로 논의가 됐다"며 "추가적 개선 필요한 경우에는 향후 기금위를 중심으로 소위원회를 구성해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