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사건 전문가 이은의 변호사
“대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용어를 판결문에 처음 사용하고 강조한 이후 사회에 분명한 영향을 줬어요. 하지만 구체적 판단 이유를 알 수 없다거나, 실체적 진실과 무관하게 유죄로 추정 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고 있는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법원이 더 구체적인 판단 이유를 밝혀주면 더욱 신뢰받는 가치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은의 변호사는 최근 인터뷰를 통해 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2년여 간 법정에서 많은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대법원은 2018년 4월 성폭력 관련 사건을 심리할 때 가급적 피해자가 처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고, 2차 피해 가능성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미투(#MeToo) 운동의 목소리가 법원 판결에 반영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이후 법원은 성폭력 관련 사건에서 이 판결을 인용하며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하고 있다.
성폭력 사건에서 다수의 피해자를 대리해온 이 변호사는 “성인지 감수성이 강조된 이후 피해자라는 존재가 인식되기 시작했다”며 “지난 2년간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고, 피부로 와닿는다”고 말했다. 피고인의 변호인이 피해자에게 과도한 증인신문을 할 때 법원이 제지한다거나, 재판에서 피해자 및 피해자 변호사의 자리와 출석 등 방청 상황을 더 세심하게 고려한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피해자의 증언 부분에서도 “개별성이 존중되기 시작했다”며 “피해자의 전반적 맥락을 살피기 위해 과거보다 법원이 더 열고 듣는다”고 했다.
하지만 성인지 감수성이 법원의 성폭력 사건 심리 방식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왔음에도, 일각에선 헌법 원칙과 정반대의 ‘유죄추정’ 원칙으로 쓰이지 않느냐고 비판한다. 법원이 피해자 진술로만 유죄 판결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변호사는 “법원이 말하는 성인지 감수성은 열세에 있는 피해자 입장에서도 공평하게 생각하라는 평등 감수성, 입장 감수성”이라며 “피해자 입장이 이랬을 수 있다는 것이지, 무죄추정원칙을 해하거나 흔드는 게 아니라 보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성인지 감수성은 실체적 진실을 더 잘 보기 위한 도구로 쓰여야 하는 것”이라며 “무죄추정원칙은 말 그대로 헌법상 원칙이고 성인지 감수성은 가치관의 영역인데, 궁극적으로 이런 원칙을 지지하는 가치관”이라고 했다.
이 변호사는 성인지 감수성이 마치 유죄추정원칙처럼 비춰지는 오해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법원이 보다 구체적인 판단 이유를 판결문에 밝혀야 한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흔히들 피해자 진술만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직접증거로써의 진술만 있는 것이지 진술만 증거인 사건은 별로 없다”며 “객관적 증거와 논리, 정황증거 등에 따라 각 사건마다 어떻게 실체 진실을 판단하고서 결론을 냈는지 지금보다 더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밝혀야 사법 영역에서 성인지 감수성 의미가 퇴색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법원에서는 이미 사건 처리 과정에서 확연한 차이가 느껴지지만 그건 재판으로 간 사건에만 해당이 되는 것”이라며 “성인지 감수성이 더욱 빛나는 가치관이 되려면 법원만이 아니라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에 대한 요구와 모니터링을 잊으면 안 된다”고도 강조했다. 안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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