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기회로 ‘반전의 승부사’

20개 품목 세계 1위 반열에

1983년 사재 털어 반도체 사업

日 제치고 반도체 D램 세계 1위로

매출 34배·시총 350배 ↑ 성과

2004년 반도체 설비를 방문해 방호복을 입고 있는 이건희 회장. [연합]
2004년 반도체 설비를 방문해 방호복을 입고 있는 이건희 회장. [연합]

“한국전쟁으로 초토화된 산업 불모지에서 삼성을 ‘한국의 삼성’에서 ‘세계의 삼성’으로 일궈낸 한국 경제의 진정한 선각자이다.”

지난 25일 타계한 이건희 삼성 회장은 아시아의 변방기업에 불과했던 삼성을 전 세계가 주목하는 초일류 기업으로 키워낸 도전가이자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였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한국 경제가 산업화 도약 시기에 있을 때 이 회장은 ‘신경영’을 선포하며 대한민국 수출의 30%를 도맡은 대들보 기업으로 성장했다.

또한 ‘제품에 혼과 문화를 불어넣으라’ ‘양보다 질’이라는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TV와 반도체, 스마트폰 등 19개 품목을 세계 1위에 등극시키며 대한민국 국격을 끌어올렸다.

▶초일류 DNA 심다=이 회장이 삼성을 이끈 27년간 삼성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위기 순간마다 빠르고 과감한 판단과 강한 집념으로 한국을 세계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나라로 각인시켰다. 이 회장이 1987년 12월 삼성그룹 2대 회장으로 취임 당시 밝힌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한 약속을 지킨 셈이다.

이 회장이 이끈 삼성의 경영성과는 눈부시다. 고인의 회장 취임 당시 9000억원이던 삼성그룹 시가총액은 이 회장이 쓰러지기 직전 해인 2014년에 318조7634억원을 기록, 348배로 증가했다. 매출은 9조9000억원에서 338조6000억원으로 34배 늘었다.

자산은 8조원에서 575조1000억원으로 70배 넘게 늘어 명실상부 재계 1위를 공고히 했다. 임직원 규모도 10만여명에서 국내외 총합 42만명 수준으로 급증했다.

한국 경제 기여도는 막대하다. 수출 규모는 63억달러에서 1567억 달러(2012년 기준)로 25배로 성장했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 가운데 삼성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13.3%에서 28.2%로 배 이상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삼성그룹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높아졌다. 브랜드 컨설팅 업체 인터브랜드가 2013년 발표한 세계 100대 브랜드 순위에서 삼성그룹은 8위에 올랐다. 인터브랜드가 집계한 삼성그룹의 브랜드 자산가치는 당시 396달러(약 40조4712억원)였다.

▶반도체 불모지에 도전 결단…애니콜 신화 창조도=이 회장 취임 후 삼성이 배출한 역대 ‘월드 베스트’ 제품은 19개에 달한다. TV를 시작으로 메모리, 스마트폰, 등을 세계 1위에 등극시켰다.

특히 삼성의 반도체 신화는 이 회장의 집념의 산물로 평가된다.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것은 1983년이다. 이 회장은 이병철 선대 회장의 반대로 ‘한국반도체’ 인수가 난관에 부딪히자 사재를 털어 사들이며 반도체 사업의 싹을 틔웠다.

반도체 사업이 어려움에 봉착할 때 마다 특유의 과감한 결단력으로 위기를 정면돌파했다. 1987년 4메가 D램 개발 경쟁이 붙었을 때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개발 방식을 스택(stack)으로 할지, 트렌치(trench) 방식으로 할지 결정을 해야 했다.

당시 회의에서 전문경영인들이 처음 시도하는 기술인 스택 공법을 도입하는데 주저하자, 이 회장은 “단순하게 생각합시다. 지하로 파는 것보다 위로 쌓는 게 쉽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는 지식과 경험이 전혀 없던 삼성이 일본을 제치고 반도체 시장에서 1위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중요한 결정이 계기가 됐다.

이후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과감한 투자로 1984년 64메가 D램을 개발하고 1992년 이후 20년간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지속 달성해 2018년에는 세계시장 점유율 44.3%를 기록했다.

이건희 회장은 1994년 4위였던 휴대폰 사업도 1년 뒤 국내 1위에 올려놨다.

삼성의 휴대폰 사업의 대변혁은 1995년 이건희 회장의 작심 결단으로 재도약했다. 1995년 3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선 해머를 든 직원들이 삼성 마크가 붙은 무선전화기 15만점을 모조리 때려부쉈다. 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하는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한 것이다. 스마트폰 1위 갤럭시로 이어지는 ‘애니콜 신화’의 시작이었다.

이 회장은 1996년 성장일로에 들어선 삼성이 안심하고 기뻐하고 있을 때, 멕시코 티후아나 전자복합단지를 방문해 위기의식을 다시 한번 고취시켰다.

이 회장은 “반도체가 조금 팔려서 이익이 난다 하니까 자기가 서있는 위치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그저 자만에 빠져 있다”고 질책했다.

이 회장의 질책과 함께 삼성은 내부 자만을 경계하고 장래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삼성그룹은 경영 전 분야에 걸쳐 3년 동안 원가 및 경비의 30%를 절감하겠다는 ‘경비 330 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했고, 한계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차세대 사업에 집중하는 한편, 경영 합리화와 사업재구축을 목표로 비상경영을 진행했다.

삼성이 비상경영에 들어간지 1년 후인 1997년, 대한민국에는 IMF 외환위기가 닥쳐왔다. 위기에 미리 대비하고 허리띠를 졸라맨 삼성은 외환위기라는 거센 파도 속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급변하는 세계 디지털 시장을 선점하는 기회를 만들어냈다.

▶외형적 성장 외에도 선진 경영시스템 도입=이건희 회장 이후 삼성은 100년 기업을 향한 무수한 노력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이 회장은 외형적인 성장 외에 선진 경영 시스템으 도입하고 경영체질을 강화하며 삼성이 내실 면에서도 일류 기업 면모를 갖추도록 노력했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삼성이 선도하는 경영시스템은 재계 전반에 영향을 주면서 대한국민 산업계를 업그레이드시켰다”면서 “IT 강국의 초석, 글로벌 영토확장, 위기극복의 리더십, 사회 문화 변화 선도, 사회공헌 활동 등은 100년 기업 삼성 뿐 아니라 한국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천예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