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전 어릴 적 이야기다. 그때에는 서울에도 놀이터, 학교운동장뿐 아니라 주택가 곳곳에 뛰놀기 좋은 공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하교하면 마루 끝에 책가방만 던져 놓고 공터로 나가 또래와 노는 어린이를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공터에서 놀이를 시작할 때마다 편을 나누는 게 어린이들의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그럴 때 으레 누군가 나서 자신의 이름을 붙여 “○○편 할 사람 여기 붙어라” 하는 노래를 부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다른 어린이는 슬쩍 눈치를 보다 ○○의 엄지를 잡았다. 대개 ‘골목대장’이라고 불리는 또래 중 운동 잘하고 힘이 센 아이가 노래를 부르며 편가르기를 했다.

어린 시절 이렇게 배운, 힘센 편에 붙는 눈치보기를 어른이 돼서도 버리지 못하면 곤란하다. 그 성인이 개인이 아닌 공권력을 행사하는 국가기관이라면 더더욱 위험하다. 국가권력이 인권을 침해하는 상황을 방조할 수 있어서다. 얼마 전 잇달아 불거진 두 사건에 대한 경찰의 처리가 그런 의혹을 키우고 있어 안타깝다. 두 달여 전 발생한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이 다시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분량이 30초가량인 이 차관의 폭행 영상을 본 경찰 수사관이 “영상 못 본 거로 할게요”라고 했다는 해당 택시기사의 인터뷰가 최근 보도되면서부터다. 사건 당시 이 차관은 로펌 변호사 신분이었다. 하지만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캠프’에 참여했고, 이후 법무부 법무실장을 지낸 현 정권 실세 중 한 사람이었다. 사법시험 출신인 당시 서울 서초경찰서 서장과 형사과장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는 이야기가 경찰과 법조계 안팎에서 불거지기도 했다. ‘알아서 봐줬다’는 의혹이다. 그러나 언론에 불거지기 전 경찰은 해당 사건을 내사 종결했다.

내사 종결이 ‘전가의 보도’처럼 쓰인 사례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 달쯤 전인 지난해 말 경찰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공소권 없음’으로 내사 종결했다. 당시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가 사망해 사실관계 확인에 한계가 있었다”고만 했다. 그러나 이달 중순 법원도 판결을 통해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결국 지난 25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박 전 시장의 언동은 성희롱”이라는 직권조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경찰은 사실상 체면을 구겼다.

박 전 시장이 사망 전까지 여당의 유력 차기 대선 주자 중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해당 사건도 ‘봐주기 의혹’에서 경찰이 자유롭기는 힘들어 보인다. 경찰은 오랜 염원이던 검경수사권 조정을 올해 이뤘다. 그러나 최근 잇달아 나온, 여권 인사에 대한 석연치 않은 사건 처리는 눈치보기에 대한 의구심만 키우고 있다. 수사 역량을 믿고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부여해도 되겠느냐는 이야기까지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의심을 딛고 수사경찰의 능력을 떨치려면 더는 ‘눈치보기 수사’ 의혹에서 경찰은 벗어나야 한다. 권력층에 과감하게 잣대도 겨눌 줄 알아야 한다. ‘이용구 사건’을 들여다보는 경찰 진상조사단도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 경찰 안팎에 불거진 각종 의혹을 씻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신상윤 사회부 사회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