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바이에른주 아우크스부르크에 세계 최초 사회공동시설 ‘푸거라이’가 있다. 1516년에 유럽 역사에서 손꼽히는 부호인 야콥 푸거가 만든 이 시설은 500년이 넘게 운영 중이다. 임대료는 단 1유로.
부자가 가난한 이를 돕는 것은 따뜻한 일이지만 동기는 제각각 다를 수 있다. 사실 푸거는 탐욕스러운 상인이었고, 부패한 교황청과 결탁해 막대한 부를 얻었다. 사후 지옥에 갈까 두려웠던 푸거는 두려움에 푸거라이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여권에서 ‘이익공유제’로 제도화하려 하고 있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어려워진 이들이 많자, 부자가 가난한 이를 돕는 미담을 떠올렸던 모양이다. 경기침체를 이겨내기 위해 푼 돈이 자산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부의 양극화가 심각해졌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곳은 우리만은 아니지만 ‘증세’ 대신 ‘이익공유’ 카드를 들고나온 곳은 우리뿐이다.
주주들의 자본을 굴려 이익을 낸 뒤 기업가치 상승과 배당으로 환원하는 게 기업의 기본적 원리다. 어려운 환경에서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할 수 있지만 성금을 내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
사회안전망 구축은 정부의 역할이고 이를 위해 세금을 거둬들인다. 2017년 우리나라의 총 조세 대비 법인세 비중은 13.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5위다. 그만큼 기업들의 세수 기여도가 높다는 뜻이다.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등 심지어 각종 사회안전망을 돕는 역할도 한다.
반면 국세청 통계연보를 보면 2019년 연말정산 신고자(2018년 귀속분)를 기준으로 근로소득세를 한푼도 내지 않은 사람은 721만9101명이다. 근로소득세 면제자 비율은 2015년 48.1%, 2016년 46.8%, 2017년 43.6%, 2018년 41.0% 등 40%대를 유지해왔다.
정부는 코로나19로 은행이 건전성 악화에 대비해야 하니 배당을 제한하자고 하는데, 금융회사가 코로나19로 돈을 벌었으니 이익을 공유하자는 곳도 여권이다. 얄궂은 권력이다. 이번엔 민주당 등 여권에서 아예 금융회사들에 재난피해자들의 대출에 대해 원금 감면을 강제하는 법안까지 제출했다. 주주 이익 훼손과 재산권 침해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이 금융을 ‘돈놀이’ 정도로 생각한다면 위험하다. 금융은 경제의 혈관이다. 순환질서가 어지러워지거나 통로가 막히면 경제 전체에 문제가 발생한다. 대부분의 경제위기가 금융위기 형태로 나타났다는 점을 잊지 말자. 국내 금융지주와 은행들의 자기자본수익률(ROE)은 선진국에 한참 못 미친다. 주가순자산비율(PBR)도 주요국 가운데 가장 낮다. 시장가치가 자기자본의 40% 안팎에 불과하다. 정부와 권력이 경영을 좌지우지하고, 금융회사들 돈을 마치 나랏돈이나 제 돈 쓰듯이 동원하니 그럴 법도 하다.
과연 푸거가 두려워했던 것은 무엇일까? 진짜 지옥에 가는 것이 무서웠을까, 아니면 탐욕스러운 상인과 부패한 교황청과 결탁한 가책이 컸을까? 다만 ‘푸거라이’가 500년 이상 운영을 이어온 것은 권력자의 압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푸거 본인의 자발적 동기로 만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려운 이를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부와 여당이 힘을 가졌다고 해서 제발 시장과 경제의 기본 원칙을 뛰어넘는 폭주는 말았으면 싶다.
![앤트로픽 IPO는 시작일 뿐…AI 모델 ‘골라주는 시장’ 커진다 [서학개미 주식회사]](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3/rcv.YNA.20260813.PRU20260813276001009_T1.jpg?type=h&h=240)
![“교과서 미래엔 AI가 있다”…‘AI 공장’된 미래엔 세종공장 [그 회사 어때?]](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2/news-p.v1.20260821.9213ff47283443e4aeec745e2b971c31_T1.jpg?type=h&h=240)
![일본서 사라진 인플레 ‘명목 앵커’…물가·엔화에 중요한 이유 [츠토무 와타나베]](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1/news-p.v1.20260816.209013b3297d4c92ab32710d529f3877_T1.jpg?type=h&h=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