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더 심화

취약계층 소외 심각

“기본권으로 접근을”

#. 초등학교 3학년 A양의 2021년 가장 큰 소망은 ‘등교’다.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온라인 수업에서, 갈수록 진도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A양은 저소득 다문화 가정 자녀다. 그나마 지자체의 도움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태블릿PC를 지원 받았지만 집에 인터넷이 깔려있지 않아, 한시적으로 제공되는 공유기로 간신히 수업을 듣고 있다. 어머니가 한국어가 익숙지 않은 탓에 A양은 집에서 수업 지도를 받기도 쉽지 않다.

#.70대 어르신 B씨는 어린 손주를 데리고 패스트푸드점을 방문했다가 등에 땀이 나는 경험을 했다. 카카오톡, 유튜브를 즐겨 사용하는 ‘신세대 할아버지’라고 자부했지만, 비대면 주문 시스템으로 전환된 패스트푸드점 키오스크는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또 다른 장벽이었다. 작동법이 낯설어 주문이 쉽지 않았다. 한참을 헤맨 끝에 매장 직원의 도움으로 간신히 주문을 완료할 수 있었다. B씨는“하마터면 손주에게 햄버거도 못사주는 할아버지가 될 뻔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세상 모든 것이 디지털로 전환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다. 인류의 역사 상 지금처럼 ‘디지털’ 의존도가 높았던 적이 없었다. 코로나19로 디지털 전환 속도마저 급속도로 빨라졌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가 “2년이 걸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코로나19로 2개월 만에 이뤄졌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다.

장기화된 코로나19로 우리 일상 곳곳에 비대면이 스며들었다. 스마트폰으로 이사갈 집을 찾고, 음식을 주문하고, 옷을 쇼핑한다. 디지털이 가장 기본권인 ‘의식주’를 좌우하는 필수 수단이 됐다.

이런 상황에 디지털 격차가 곧 삶의 질 격차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 ‘사각 지대’를 방치하면 빈부격차보다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인류는 포스트 코로나(코로나 이후) 시대를 맞아 ‘디지털 격차’라는 더 큰 과제를 마주하게 됐다.

▶고령층·농어민 디지털 ‘취약계층’ 보완 시급= 국내서 크게 ‘장애인, 고령층, 저소득층, 농어민’을 우리 사회의 ‘4대 디지털 취약계층’으로 정의하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 4대 취약계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평균 69.9%다. 일반 국민을 100%로 봤을 때 30%포인트 이상 격차가 나타나고 있다.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인터넷 상시 접속 가능 여부 등 디지털 정보화 접근성 ▷인터넷뱅킹· 전자상거래 등 디지털 정보화 활용성 ▷PC·모바일 디지털 정보화 역량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세부적으로 4대 취약계층 중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인 계층은 고령층이다. 2019년 고령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64.3%다. 2016년 54%, 2017년 58.35%, 2018년 63.1%로 올라오고 있지만 여전히 60%대에 머물고 있다.

농어민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70.6%다. 2016년 61.1%, 2017년 64.8%, 2018년 69.8%에 이어 2019년에 처음으로 70%를 넘었으나 일반 국민과 차이는 적지 않다.

저소득층 계층의 2019년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87.5%로 4대 취약 계층 중에서는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2016년 77.3%, 2017년 81.4%, 2018년 86.8%에서 지속 상승한 것이다. 장애인 계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이 75.2%로 뒤를 이었다. 2016년 65.4%를 보였던 장애인 계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2017년 이후 70%대(2017년 70%, 2018년 74.6%)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4대 취약계층 외에도 성별, 직업별, 월가구 소득별로도 디지털 정보화 격차는 존재한다.

우선 성별로는 남성이 104.9%로 기준점인 일반국민 100%를 웃돈 반면, 여성은 95.1%에 그친다.

직업별로는 전문관리·사무직(124.1%), 학생(115.2%), 서비스·판매직(101.3%)이 일반국민 수준을 웃돌았다. 생산관련직 91.6%, 가정주부 79.9%, 농어민 70.6%, 무직·기타 59.9%를 보여 직업별로 큰 편차를 보였다.

월소득이 높을수록 디지털정보화 수준도 높았다. 월소득 400만원 이상 112%, 300~399만원 104.7%, 200~299만원 92.2%, 기초수급층 87.8%를 보였다.

▶코로나19가 만든 새로운 격차…미래기술이 더 큰 ‘소외’ 낳기도= 코로나19가 만든 일상 속 변화로 인해, 실생활에서 체감되는 새로운 서비스의 격차도 등장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배달 음식 서비스다.

장기화 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배달 애플리케이션이 국민 먹거리를 책임지는 수단이 됐지만 연령별, 지역별 서비스 격차도 적지 않다. 실제 닐슨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주요 배달앱 이용자의 60%는 20~30대에 집중(2019년 기준)됐다.

지역별로도 배달 플랫폼 생태계가 상대적으로 잘 구축돼 있는 서울, 인천, 경기 지역에 이용자 비중이 절반 이상 집중됐다.

즉, 스마트폰 앱 사용의 활용도, 서비스 접근성이 만든 디지털 격차가 식생활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셈이다.

5세대(5G) 통신, 인공지능(AI) 등 차세대 신기술이 등장할수록 디지털 격차가 심화되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신기술이 보편적인 기술로 확산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는 동안 특정계층, 특정 지역에 기술 쏠림 현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차세대 통신 기술로 꼽히는 5G의 경우, 오는 4월로 상용화 만 2년이 되지만 지역별 격차가 여전히 극심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조사한 2020년 통신서비스 커버리지 점검 결과를 보면, 지난해 12월 기준 서울 지역의 5G 커버리지는 478.17㎢, 6대 광역시는 1417.97㎢다. 서울 지역은 전체면적의 79%, 6대 광역시는 전체의 29.43% 면적이 5G 커버리지에 포함된다.

반면, 78개 중소도시의 5G 커버리지는 전체 면적의 8%(3513.16㎢)에 불과했다.

5G 전국망 구축도 내년에야 완료될 전망이다. 2022년까지 농어촌 지역에서 통신사 간 망 공동이용(로밍)을 추진해 5G접근성을 강화한다. 품질평가를 강화하고 대상에서 제외됐던 지역도 확대하기로 했다.

또 하나의 대표 ICT 기술인 AI 역시, 디지털 격차가 극심한 신기술 분야 중 하나다. 단적으로 일반국민의 AI스피커 보유율이 22.4%인 반면, 앞서 언급했던 취약계층은 7.1%에 그쳐 일반 국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전문가들 “디지털 정보화, 이제 기본권으로 접근해야”= 유례없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정부 차원의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과기정통부가 올해 업무 계획에 ‘디지털 역량 교육’을 중점 과제로 포함시킨 것도 그 일환이다. 과기정통부는 디지털 역량 교육 인원을 지난해 20만명에서 올해 27만명으로 확대키로 했다. 디지털 격차 해소 차원에서 올해 공공 와이파이도 1만5000개를 추가로 세울 계획이다.

더 나아가 전문가들은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해 이제 디지털 정보화를 필수 ‘기본권’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교수는 “디지털에 배제되는 것이 곧 사회적 배제로 이어지고, 반대로 사회적으로 낙오된 사람은 디지털 기술에 낙오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고 있다”며 “경제, 사회 참여를 촉진시키기 위해 디지털 기술을 가르치고 부가가치를 창출 시키는 것이 전 세계 국가의 중요한 정책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황 교수는 “디지털은 단순히 여가 목적이 아니라 생활 기술이 되면서 최근에는 기본권에 가깝게 인식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며 “디지털 역량 차이는 사회적으로도 큰 비용을 만들기 때문에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차원에서, 정보 기본권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이제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과 사회적 보조 수단 역시 시급한 과제로 꼽혔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원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지식, 능력을 의미한다.

정순돌 이화여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과 보조적인 장치도 필요하다”며 “외국의 경우 키오스크 사용 시 직원을 통해 노인계층을 집중적으로 도와주는 경우가 있는데, 사회적 배려 차원의 이 같은 보조 수단을 마련해 놓는 것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박세정·유동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