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종가] 고산 해남윤씨 어초은파 녹우당
윤두서 후 3대, 과거급제 선비 그림 잘 그려
윤효정, 백성 힘들때 곳간 열어 ‘적선지가’
‘유배가 직업’ 고산, 음악으로 카타르시스
해남,완도,진도 간척, 부자가문되는데 일조
종부,생활경제 규한록 집필,문화재 수천점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몇몇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화가로 여기지만, 실제 그는 과학, 철학 등 다방면에 빼어난 업적을 남긴 팔방미인이다. 한국의 윤두서(1668~1715)가 그렇다. 그 역시 인문학,지리학,기하학,의학,천문학,병법 등에 두루 능했다.
그의 아들 윤덕희, 손자 윤용이 모두 과거에 급제했으면서도 그림을 잘 그린데다, ‘윤두서 자화상’이 국보(제240호)가 되고 영화 ‘관상’의 메인타이틀이 되면서 공재 일가의 화가 이미지가 강한 듯하다.
해남 녹우당 고문서 틈새에서 발견된 ‘미인도’는 이 그림 잘 그린 3명 중 한 명이 그린 것이다. 조선 500년사 통틀어 3대 화가로 꼽히는 신윤복의 동명 그림과 비슷한 시기에 그려졌는데, 미녀의 행동이 좀 더 자연스럽고 현실적이며 움직임이 있다.
화가로서 윤두서는 겸손과 친서민의 특징을 보인다. 풍속화를 많이 그렸다. 국보인 윤두서 자화상에 많은 국민이 저마다의 감상을 가졌을 것이다.
“6척도 안되는 몸으로 사해(四海)를 초월하려는 뜻이 있네. 긴 수염 길게 나부끼고 얼굴을 기름지고 붉으니, 바라보는 자는 신선이나 검객이 아닌가 의심하지만, 저 진실로 자신을 낮추고 양보하는 기품은 돈독한 군자로서 또한 부끄러움이 없구나.”
공재의 절친, 담헌 이하곤의 ‘검객 운운’ 논평은 거칠고 듬성듬성할 것 같았는데 군자의 도가 몸에 밴 꽉찬 인물, 공재의 반전매력과 함께 겸양까지 엿볼 수 있게 한다.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증손이자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외증조부인 윤두서는 과거에 급제하고도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그는 대동여지도보다 150년 일찍, ‘동국여지지도’와 일본지도를 만들고, 동아시아 서체를 집대성했으며, 천문학과 수학책을 펴내는 등, 다빈치 처럼 다방면의 천재였다.
윤선도-윤두서-윤형식으로 이어지는 해남윤씨 어은초파를 연 인물은 장가를 잘 간 ‘착한 남자’ 윤효정이다. 해남윤씨 시조인 고려 문종때 사람 윤존부의 12세손이다.
윤효정은 해남정씨 귀영의 외동딸과 혼인하고 생원시에 합격한 뒤, 교육에 전념했는데, 해남정씨 가문의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았던 것이다. 그는 이 재산을 백성 구제에 써 ‘삼개옥문적선지가(三開獄門積善之家)’라는 명예를 얻었다. 어은초파 종가는 백성의 세금을 세 번이나 대납하고 곳간 문을 열어 백성을 구휼해 선행을 쌓았다.
재산형성도 탁월했다. 14세 윤의중~16세 윤선도는 노화도 석중마을앞, 진도 임회면 굴포리 등지를 간척해 토지를 넓혔다. 남인의 거두, 대군들의 스승이었다가 정쟁에 휘말려 낙향한 고산은 간척을 통한 재산형성의 지혜를 발휘했다.
고산이 ‘유배가 직업’일 정도로 강직한 성품, 망국위기에 백성과 함께 임금을 구하러간 충절, 시문에 능한 선비로 알려져 있는데, 음악에도 능했다고 종가는 전한다. ‘지국총’ 후렴구에서 그의 음악성을 눈치챈 국민도 있을 것이고, 인문학이 풍부한 국어교사였다면 고산의 시가 노래를 만들기 위한 사전작업인 경우가 많았다는 설명도 학생들에게 해줬을 것이다. 고산은 ‘음악의 심신청정론’을 설파하기도 했다. 윤선도는 실제 거문고를 다루었으며, 연주자들과 어울려 같이 노래하고 작곡하기도 했다. 녹우당엔 고산의 거문고와 제작 및 사용법을 수록한 ‘회명적측’ 기록도 전해지고 있다.
보길도 부용동, 현산면 금쇄동 원림을 예술적으로 잘 조성한 것, 훗날 윤두서 고택 18칸을 비롯해 문화재를 잘 보존한 것 등은 탄탄한 경제력과 이를 잘 관리한 경영능력에 힘입은 바 크다.
모든 전각과 문화재가 막대한 경제력으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 윤형식 전남종가회장은 사랑채 건물은 효종이 스승인 윤선도 선생에게 하사한 것으로 1668년 배로 옮겨졌으며, 현판은 옥동 이서가 절친 윤두서 선생에게 써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선도의 ‘충헌공 가훈’은 아들에게 쓴 편지 형식이다. 종가관리, 재산분배, 노비관리, 검소한 생활과 예절 등을 기록했다. 수신(修身)과 근행(勤行)으로 적선(積善)하고 인자한 행실(仁行)을 제일의 급선무로 여기며 구습과 폐단을 고치라고 가르쳤다.
윤두서의 증손자며느리 광주(廣州)이씨 종부는 종가살림살이를 세세히 기록한 규한록을 남겨, 조선 남서지방 집안살림총책들의 교과서가 됐다. 그는 가문 중흥의 영부(英婦)로 추앙받고 있다. 20세기들어 또다른 광주이씨 이상래(1882~1971) 종부는 나라의 변란이 있을 때 마다 집안 보물을 벽장 속에 감추는 등 종가의 문화재를 목숨걸고 지켰다.
해남윤씨 어초은종가에서는 국보 외에도 ‘해남윤씨 가전 고화첩’, ‘윤고산 수적 관계문서’, ‘지정14년 노비문서’ 등 국가지정 보물과 고산유고 목판, 사적 녹우당, 국가명승 보길도 부용도 원림, 천연기념물 비자나무숲, 고문서 2500점과 전적 3000권 등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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