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tvN 지식예능 ‘벌거벗은 세계사’가 설민석 하차 이후에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강연자와 자문교수와의 공방전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이 일본에 떨어뜨린 핵무기에 대한 최태성의 강의도 논란이 일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지난달 30일 방송된 4회에서 장항석 연세대 의과대 교수가 ‘중세 유럽시대 페스트(흑사병)’에 대해 강연했다. 이어 31일 자문에 참가했던 박흥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가 자신의 SNS에 “중세 사회에 대한 이해도 거의 없고 당시 사료도 해석할 줄 모르는 한 의사가 청취자들에게 왜곡된 인식만 키웠다. 내용도 구성도 꽝이었다. 힘들게 자문해 주었더니 내가 자문한 내용은 조금도 이용하지 않았다. 그럴려면 이름은 왜 넣겠다고 했는지”라고 방송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장 교수는 “SNS에 공개적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수준의 의사가 나섰다’는 식의 인신공격성 언급은 지나친 발언이며, 이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박흥식 교수님께 같은 교수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대 인간으로 서로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이 이야기를 풀어볼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제가 제기한 문제에 대한 박교수님의 해명과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청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강연자와 자문교수와의 팩트와 함께 감정까지 실린 공방전에서 정작 쏙 빠져 있는 것은 제작진이다. 방대한 역사적 주제를 한시간여에 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EBS TV에서 세계 각국의 역사를 수십개의 강의로 전하는 ‘먼나라 이웃나라’ 작가인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의 ‘EBS 클래스e 특강’과는 다르다. 그래서 고도의 연출 편집기술을 요한다. 그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담당 PD다.
연출자는 프로그램의 효과적인 제작을 위해 출연자를 섭외할 수 있고,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방송에서 쓰는 권한, 쓰지 않는 권한 모두를 PD가 갖고 있다. 10가지를 자문받아도 1개만 쓸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강연자가 틀린 내용을 강의했다면 강연자에게 책임이 있다. 하지만 이 경우조차도 오류를 잡아내지 못한 제작진도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 방송의 최종 책임은 제작진이 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제작진은 현재의 논란에서 빠져있다.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다. ‘주인’은 가만 있는데, ‘객’들끼리 싸우는 모습이다.
장항석 교수는 14세기에서 17세기에 걸치는 서양 페스트(흑사병)의 방대한 역사를 강의했다. 장 교수는 유럽상인의 중요한 무역항로였던 크림반도의 카파 성에 몽골 군대가 침입하면서 퍼뜨린 페스트가 시칠리아 등 유럽 전역에 2~3년만에 확산되었다면서, 이후 어떤 역사적, 사회적 변화를 겪은지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자문을 해준 박 교수는 이 방송에 대해 “흑사병을 10년 넘게 공부하였고, 중세 말기 유럽을 전공하는 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건 정말 아니다 싶다”, “카파 공성전에 대한 자료는 현장에 있던 사람이 기록한 것이 아니고 신뢰할 수도 없는데 마치 역사적 사실인양 해석해 나쁜 것은 다 아시아에서 왔다는 잘못된 인식을 고착시켰다”, “흑사병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르네상스라는 희망이 시작된 게 아니라 동시대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따지자면 르네상스가 시작한 후 흑사병이 발생했다”, “통계나 병인학적 측면에서도 최근 해석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역사가 방송에서 고생이 많다”는 등의 말을 했다.
지금 이 방송은 다시보기로 볼 수 있다. 이 강의를 보면서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맞는 부분과 틀린 부분을 시청자가 구분해가면서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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