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업무보고는 그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확정하는 자리다. 해마다 연초 정부부처 장관이 대통령을 상대로 직접 보고한다. 이 자리엔 정부부처 관료와 국회 여당 대표, 청와대 수석, 관련 전문가 등이 참석한다. 대통령과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 내용은 국민에게 그대로 공유된다. 그래서 정부는 업무보고를 그저 업무보고로 여기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업무보고 자리에서 말했던 것처럼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현장과 손잡고, 정부의 정책 의지를 현장에서 가장 먼저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자리로 여긴다. 국민을 상대로 정책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자리란 이야기다.
16일 있었던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 주택시장의 목소리는 없었다. 국민들이 체감하는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는 사람이 없으니 공감도 이해도 찾을 수 없었다. 당장 시장에선 ‘2·4공급대책’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데, 해명이나 추가 설명을 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시장에선 어딘지 정해지지도 않은 2·4공급대책 대상지에 집을 산 사람에 대한 정부의 ‘현금청산’ 계획 때문에 거래가 끊기고 혼란을 겪고 있는데, 관련 보완책이나 해명도 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저 “2·4공급대책을 중심으로 주택가격과 전월세 가격을 조속히 안정시키는 데 부처의 명운을 걸어주길 바란다”고 했다. “도심지에서도 공공의 주도로 충분한 물량의 주택공급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변창흠 표 부동산 정책을 반드시 성공시켜 국민들이 더 이상 주택문제로 걱정하지 않도록 해주기 바란다”며 2·4공급대책에 대한 무한 신뢰를 드러냈다.
정부는 사실 사과부터 했어야 했다. 작년 7월까지만 해도 ‘수도권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는 게 정부 입장이었다.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은 그 직전까지 수시로 주택 공급이 충분하니, 집을 사는 건 손해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걸 손바닥 뒤집듯 바꾼 게 작년 ‘8·4공급대책’이었다. 3기 신도시 등 수도권에 127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올 들어 2·4공급대책을 통해 서울 32만가구 등 전국 도심에 83만가구를 짓겠다고 추가 공급계획을 내놓았고, 이번 국토부 업무보고의 첫 번째 과제로 ‘주택 공급 확대 역점’을 내걸었다.
그렇다면 이번 업무보고엔 왜 정부 입장이 그렇게 바뀔 수밖에 없었는지 해명해야 했다. 어떤 판단 착오가 있었는지 진솔하게 설명하고, 공급 대책을 미리미리 추진하지 못했던 데 대한 철저한 반성이 필요했다.
업무보고에 드러난 2·4공급대책의 세부 추진 계획은 초라했다. 가장 공급물량이 많은 공공주도 ‘정비사업’(13만6000가구)과 역세권 등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19만6000가구) 등 공공주도 사업은 후보지 선정을 7월 중 목표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제시했다. 11만 가구를 공급한다는 ‘소규모 정비사업’은 지자체 등을 상대로 설명회 및 컨설팅을 개최할 계획이라고 했다.
3만가구 규모의 도시재생 사업 등 다른 사업도 대부분 설명회를 개최하고 홍보를 적극 하겠다는 계획만 나열했다. 무주택 서민들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의 저렴한 주택 유형으로 거론되며 관심을 끌었던 지분적립형 주택, 이익공유형 환매조건부 주택 등은 계속 연구해 보겠다는 식의 계획만 언급했다.
말하자면 단 한 곳도 확정된 사업은 보이지 않았다. 작년 발표한 8·4공급대책을 포함해 그나마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사업은 올해 하반기 있을 3기 신도시 사전 청약 계획일 뿐이다. 이것도 실제 입주가 이뤄지려면 아무리 빨라도 3~4년 후다.
문 대통령은 2·4공급대책을 통해 집값 안정에 정부의 명운을 걸라고 했지만 주택공급은 단기간 정부가 명운을 걸어서 실현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더군다나 도심 공급 계획은 민간의 절대적인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사업인데 문 대통령의 임기는 이제 고작 1년 남짓 남았다.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의 말처럼 아파트는 밤새워 찍을 수 있는 빵이 아니다.
박일한 건설부동산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