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성인잡지 ‘허슬러’를 창간한 래리 플린트가 지난 10일 사망했다.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서 성인물산업을 키운 사업가인 그는 종교계 유명인사를 노골적으로 비방하다 소송전에 휘말려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한 유명한 판례를 남겼다.
플린트는 1983년 기독교 원리주의자인 제리 폴웰을 비방하는 가상 인터뷰를 허슬러에 게재했다. 폴웰이 성 상품화를 이유로 자신을 비판하자 조롱으로 대응한 조치였다. 단순히 폴웰이라는 인물의 가식적인 면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근친상간을 거론하는 등 도저히 교계가 수용할 수 없을 정도의 모욕적인 내용을 다뤘다. 다만 이 내용은 실제가 아니라는 점은 표시했다. 플린트는 폴웰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오자 대법원에 상고했다. 미 연방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플린트의 손을 들어줬다. 공적인 인물이나 정책을 비판할 권리는 미국 시민 누구나 누릴 수 있고, 설령 그 비판이 증오나 악의에 의한 것이라도 ‘생각의 교환’에 기여하는 이상 불법이라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이 판결로 미국 사회는 창작물에서 유명인을 실명으로 비난하고 조롱할 수 있게 됐다.
주목할 것은 미 연방대법원이 래리 플린트를 ‘선택’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 연방대법원은 어떤 사건을 심리할지 고를 수 있기 때문에 플린트 사건을 외면하는 게 가능했다. 당시 플린트는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나체 일광욕 사진을 게재하며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재판 과정에서는 국가와 법정을 모독하는 발언을 반복하며 논란을 키웠다.
하지만 미 연방대법원은 손가락질당하는 플린트 사건을 피하지 않고 기꺼이 선택했다. 플린트가 여론의 비판을 받고 사람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더라도, 미국 수정헌법 1조에서 규정한 표현의 자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다룰 필요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다룬 1996년 영화 ‘래리 플린트’의 원제는 ‘대중 대 플린트(The people vs. Flint)’다. 실제 사건 명인 ‘허슬러 대 폴웰’을 각색한 제목이다. 영화는 플린트가 단순히 폴웰 목사 개인이 아니라 ‘쓰레기 같은 표현에는 자유를 보장할 필요가 없다’는 대중의 통념과 싸웠다고 봤다.
여권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이 나올 때마다 법원을 향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고 비하하고, 개혁을 거론하며 손을 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하지만 법원은 선출되지 않아서 여론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재판소도 여기에 포함된다. ‘양심적 병역 거부’나 ‘낙태죄 폐지’는 입법으로 해결하는 게 가장 바람직했지만 결국 세상을 바꾼 것은 선출되지 않은 헌법재판관과 판사들이었다.
각종 사회적 갈등이 사법 절차로 해결되는 우리 사회특성상 법원이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법은 다수결의 영역이 아니다. 오히려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사안에서 용기 있게 헌법이 정한 가치를 지켜낼 때 법원의 존재 의미가 빛이 나게 마련이다. 유독 법원에 ‘다양성’과 ‘소수자 보호’를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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