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핵연료는 원자력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나면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방폐물 중에 준위가 가장 높은 물질이다. 방사능의 소멸 기간도 세대를 훨씬 뛰어넘는 초장기이다 보니 이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일은 단순히 현세대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후손의 생명과 안전과도 직결되는, 그야말로 국가적 중대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데 필요한 시설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노력한 시간은 꽤 오래됐다. 9번의 부지 확보 실패 끝에 지난 2005년 마침내 경주 처분시설을 확보할 수 있었으나 이마저도 중·저준위 방폐물을 처분하기 위한 시설이었을 뿐 사용후핵연료와 같은 고준위 방폐물은 여전히 갈 곳이 없다. 그사이 원전부지 내에 사용후핵연료는 쌓여만 가고 있다.
지난 3월 18일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가 향후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과 관련한 대정부 권고안을 발표했다. 재검토위원회의 활동 과정에서 위원장이 중도사퇴하는 등 논란도 있었지만 1차 공론화 이후 6년 만에 전 국민, 원전지역 주민,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를 정리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내용상으로도 독립적 행정위원회 신설, 특별법 제정 등 그동안 각계에서 제기해온 사항이 비교적 잘 반영된 것 같아 앞으로 정부가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을 마련하는 데 적극 참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권고안이 사용후핵연료 관리를 위한 “십수 끝의 성공”을 준비하는 새로운 출발이 되길 바란다.
이러한 성공은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세대를 초월하는 국민 안전에 관한 사항인 만큼 정부만이 아니라 현세대와 미래 세대가 함께하는 국민적 의지와 합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담론을 하는 데 권고안에 담긴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권고안은 전문가집단의 기술적 타당성 외에 주민 수용성까지 확보할 수 있는 부지 선정 방식을 법제화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스웨덴은 부지 선정 방식을 전문가 중심에서 주민이 참여하는 유치 공모 방식으로 변경하면서 부지 확보에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이는 주민 의지에 의해 부지 확보를 시작해야 성공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며, 권고안이 제안하듯 주민 의사를 확보할 수 있는 제도를 법제화하는 것은 부지 확보의 매직키가 될 것이다.
정부의 불신이 문제라면 새로운 거버넌스 정비도 적극 검토해볼 만하다. 권고안이 제안한 독립적 행정위원회와 같은 정책 결정 체계라면 사회환경 변화와 정권교체에도 영향받지 않고 일관되게 국민의 생각을 수렴하고 집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그간 저버린 정부 신뢰를 회복하고 흩어져 있는 사용후핵연료 관리 체계를 하나로 통합해 전문성을 쌓아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일수록 단순함에 답이 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시설은 필요하다는 데 이미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사실이 새로운 시작을 여는 실마리라고 믿는다. 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 과정에서의 갑론을박은 겪어야 할 과정이었고, 앞으로 어떻게 안전하게 관리시설을 지을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우리는 물론 후손에게도 안전한 대한민국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사용후핵연료를 모아 관리하는 시설이 들어설 수 있기를 이 분야에서 30여년을 연구한 전문가로서 간절히 희망한다.
김경수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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