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회사·SI업체·언론사 대표 등 거쳐
막걸리업계 입문 10년, 제자리 찾은 느낌
코로나19 영향 ‘홈술’ 트렌드 대세 정착
유흥용보다 가정용 소비 많은 최초의 해
‘4050 아저씨의 술’ 올드한 이미지 탈피
MZ세대 취향 저격 ‘젊은장수’ 변화 시도
막걸리 맛있게 먹는 나만의 방법 공유 등
새로운 접근법으로 ‘폼 나게 막걸리, 캬~’
“막걸리가 4050 아저씨의 술로 남아서는 이 시장의 미래는 없습니다. 2030 젊은 세대 뿐아니라 여성들까지 장수 막걸리의 주 소비 계층으로 끌어들이는 게 제 재임기간의 최대 목표입니다. 그간 못했던 막걸리 업계의 맏형으로서 이 역할도 충실히 할 생각입니다”
먼길을 돌고 돌아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10월 서울탁주제조협회 영업본부를 이끌게 된 유병창 사장(71) 이야기다. 포스코라는 국내 굴지의 철강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포스코의 SI(시스템 통합) 자회사와 언론사의 대표이사를 거쳐 삼성전자 사내 대학 교양학부 교수까지 역임하는 등 수십 년간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은 많았지만, 이제야 몸에 맞는 옷을 찾는 듯 했다.
헤럴드경제가 최근 서울 망원동 장수막걸리 홍보관에서 만난 유 사장은 하지만 경험이 많은 장수의 노련함 보다 막 업계에 뛰어든 루키와 같은 번뜩임이 더 돋보이는 최고경영자(CEO)였다. 그도 그럴것이 사회생활 경험은 40여년 이상으로 길었지만, 막걸리 업계에 발을 담그기 시작한 것은 10년 남짓인 덕분이다.
유 사장은 “증조부님이 서울에서 양조장을 하신 인연으로 이곳에서 중책을 맡게됐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이어 “장수 막걸리에게 필요한 건 2030 여성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젊은 감각인데 괜히 노쇠한 내가 방해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에 (대표직 제의를) 수 개월간 고사했다”면서도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지인의 말에 용기를 얻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휩쓸었던 지난해는 우리 사회 뿐 아니라 주류업계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외출을 자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집에서 술을 즐기는 ‘홈(Home)술’ 트렌드가 대세가 됐다. 덕분에 주류 역사상 처음으로 가정용 주류 소비가 유흥용 주류를 뛰어넘은 한 해로 기록되기도 했다.
특히 산업보호 차원에서 일찍부터 온라인 판매가 허용된 전통주가 재조명됐다. 스마트오더(온라인 주문 후 매장 픽업)가 이제 막 시작된 와인은 ‘제2의 전성기’를 누리며 판매량이 곱절 이상 늘었다. 막걸리 역시 전통주로서 코로나 수혜를 누렸지만, 서울탁주제조협회에서 만드는 서울장수는 사실 그 혜택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장수 막걸리는 온라인으로 판매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 사장은 “지난해 코로나19가 탁주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서울장수는 그 수혜를 누리지 못했다”며 “다만 전년도 수준의 출고량을 유지할 수 있어 내부적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장수생막걸리 브랜드의 출고량은 전년도와 비슷한 16만㎘ 내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장수막걸리는 왜 코로나 수혜를 못누렸을까. 정부로부터 전통주로 인정을 받지 못해 온라인 판매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막걸리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은 장수막걸리가 모순적이게도 현행법상 전통주 제조업체로서 인정을 못받은 셈이다.
유 사장은 “전통주로 인정을 받으려면 공장에 농업법인을 만들고, 현지 농부가 지분 참여를 해야 하며 원료를 인근 3개 군에서 나는 원료를 사용해야 한다”며 “소형 양조장은 이런 조건을 갖추기가 비교적 쉽지만, 우리처럼 대형 업체는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말했다.
막걸리 대형업체들이 전통주 제조 업체로 인정받기 어려운 이유는 농업법인이나 농부들의 지분 참여는 둘째 치더라도 막걸리의 주 원료인 쌀을 양조장 주변에서 모두 조달하기는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가격 역시 너무나 비싸다. 그는 “국내산 쌀을 시중에서 사려면 kg당 2700원이고, 정부가 수매해 판매하는 정부미는 1000원, 수입쌀은 507원”이라며 “인근에서 쌀을 사면 정부미보다 2.7배, 수입쌀보다 5배 이상 비싸게 주고 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인근 지역 쌀로 막걸리를 만들면 원가 상승으로 가격을 올릴 수 밖에 없는데, 결국 소비자 부담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유 사장이 요즘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바로 장수 브랜드의 이미지다. 장수막걸리가 수십 년간 서울·경기 지역에서 40% 이상의 점유율을 유지하며 안정적인 영업을 했지만, 사실 ‘4050 아저씨들의 술’이라는 올드한 이미지 탓에 더 이상의 시장 확대는 사실상 어려웠다.
하지만 유 사장은 최근 경쟁사인 지평 막걸리의 활약을 보면서 무릎을 탁 쳤다. 지평주조는 막걸리 3세인 김기환 대표가 양조장을 물려받은 이후 업계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90년 이상이 된 경기 가평 양조장을 ‘힙’한 막걸리 박물관으로 만드는 등 브랜드 스토리를 잘 구성해 2030 젊은 고객들도 거부감 없이 막걸리를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유 사장 역시 “지평은 경쟁사이긴 하지만 배울 점이 많은 회사”라며 “장수막걸리를 만드는 서울탁주제조협회도 서울의 양조장이 모여 만든 단체인 만큼 양조장 하나하나의 역사를 따지면 100년이 넘은 곳도 많을텐데 이런 부분을 살리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협회도 내년이면 설립된 지 50년이 된다”며 “이를 계기로 회사의 역사집을 만들고 우리의 역사를 홍보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장수 역사의 재조명을 계기로 고객들과의 소통에도 적극 나설 소통할 방침이다. MZ(밀레니얼+Z)세대의 주요 키워드가 ‘소통’인 만큼 소비자와의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장수의 가치를 다양한 방법으로 알리겠다는 것이다. 특히 ‘장수’의 개념을 ‘오래 산다’는 뜻으로 국한하지 않고, 힘이 쎈 ‘장수’나 장수할만큼의 ‘건강함’, ‘영원’, ‘흥’ 등으로 확장해 다양한 방식으로 장수 브랜드를 보여줄 예정이다. MZ세대가 즐겨하는 ‘언어 유희’를 차용해 브랜드 이미지를 재밌게 어필하겠다는 설명이다.
유 사장은 “지난해 장수가 처음으로 TV광고를 시작했는데, 그 콘셉트가 바로 ‘십장생’”이라며 “사실 ‘10일간 유통되는 장수생막걸리’라는 뜻이지만, 젊은 여성인 경수진씨가 광고에 나와 십장생을 외치니 젊은 고객들이 재밌어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자기 주도적인 MZ세대들의 취향에 걸맞게 ‘막걸리를 새롭게 먹는 방식’을 개발할 방침이다. 예전처럼 사내 연구팀이 아니라 사회관계망(SNS)에서 활동하는 장수막걸리 서포터들과 함께 할 계획이다. 오랜 전통의 막걸리라도 새롭게 먹는 방식을 개발하면 막걸리에도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게 유 사장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유 사장만의 막걸리 먹는 방식이 있을까. 그는 퇴근하는 길에 동네 마트나 편의점에서 막걸리 2병을 사면 한 병은 냉동실에, 다른 한 병은 김치 냉장고에 넣는다. 그는 “냉동실에 넣어 논 막걸리에 살얼음이 얼때 쯤 잘 흔들어서 마시면 기존 막걸리보다 맛이 산뜻하다”며 “샐러드 등 서양 음식과 함께 곁들여도 어울릴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온도에 따라 막걸리는 다양한 맛이 난다”며 “차갑게 식힌 막걸리는 트름도 적다”고 귀뜸했다.
그는 김치 냉장고에 넣은 나머지 한 병에 대해 궁금해 하는 기자에게 “장수 생막걸리는 유통기간이 10일 밖에 안될 정도로 짧다”며 “온도 변화가 거의 없는 김치 냉장고에 넣어 놓으면 한 달이 넘어도 탄산이 살아있을 만큼 그대로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날에는 한 병으로 모자라는 날도 있지 않나”며 웃었다. 신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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