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예술창작산실 우수전시지원작

아르코미술관 ‘그 가운데 땅’展

연극적 서사-시각예술 공감 전시

2021년 시각예술창작산실 우수전시지원 선정작 ‘그 가운데 땅: 시간이 펼쳐져 땅이 되다’ 퍼포먼스 전경.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2021년 시각예술창작산실 우수전시지원 선정작 ‘그 가운데 땅: 시간이 펼쳐져 땅이 되다’ 퍼포먼스 전경.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조울증에 걸린 외국인 노동자가 말한다. “전 사실 고민은 없어요.... 가끔 스트레스? ...공장에서 한국말 잘 못알아 들으면 욕하거나 막 발로 차요. 이젠 괜찮아요. 와이프가 한 번 가보라고 해서 왔어요. 원래 야근하면 돈 더 받는데 온 거예요”

공황장애에 걸린 30대 주식고수 인플루언서가 말한다. “돈 내고 상담받으면 한 두시간 오롯이 내 이야기만 들어주는 데 가족보다 낫다는 말이예요. 내가 당당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죄짓고 살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XX 여기 오면 죄지은 느낌이랄까”

5개 배역을 번갈아 하는 남자배우의 독백이 끝나자, 바로 옆에서 상영되던 애니메이션으로 시선이 옮겨진다. 현대미술작가 카라 워커의 ‘8가지 가능한 시작’(2005)이다. 아프리카에서 영문도 모른채 배에 실려와 노예의 삶을 강요당했던 흑인의 삶이 묘사된다. 노예선은 셀 수 없이 많은 목숨을 바다에 버리며 새로운 땅에 도착한다. 이들의 목숨 값으로 도시가 세워졌고, 작물이 자란다. 어둠이 걷히자 바닥에 깔린 카페트가 보인다. 검은 카페트엔 성이 없는 이름만 빼곡하다. 김수자 작가의 ‘개척된 성명들’(2002)이다. 노역에 희생된 무명의 흑인 이름들이다. 과연 진짜 이름이긴 할까. 그저 사람이 있었다는 기록일 뿐이다.

퍼포먼스로 완성되는 전시가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관장 임근혜)에서 열린다. 난해한 현대미술을 좀 더 쉽게 다가가려는 시도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박종관)는 2021년 시각예술창작산실 우수전시지원 선정작 ‘그 가운데 땅: 시간이 펼쳐져 땅이 되다’를 4월 22일부터 개최한다.

독립기획자 전민경이 기획한 이 전시는 ‘시간이 펼쳐져 땅이 되다’를 주제로 서로 다른 시간이 공존하는 다섯 개의 서사를 조형적으로 해석한다. 전시 제목인 ‘그 가운데 땅’은 판타지 문학의 대가 J.R.R 톨킨의 대표작에 등장하는 ‘중간계’에서 따왔다. 전민경 기획자는 “현대미술은 난해한 것이 아니라 낯선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어떻게 하면 그 낯섦을 극복할 수 있을지 그래서 나온 것이 ‘가운데 땅’이다”라며 “지식이 없어도 깊이 느끼고 공감할 수 있도록 관객이 연대하고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고민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전시에 참여한 작가는 내로라 하는 현대미술 작가들이다. 사운드와 라이트아트로 도시 공간의 추상적 풍경을 재현한 손경화, 상상과 현실이 뒤섞인 몽환적 자연풍경을 그린 ‘문성식’에 이어 최근 세계적 이슈로 떠오른 ‘BLM’(Black Lives Matter·흑인의 삶도 중요하다)을 떠올리게 하는 카라워커와 김수자, 다채널 영상을 선보인 문소현, 자본중심의 미술계에 대한 분노와 조롱의 퍼포먼스 영상을 선보인 폴 메카시 등 면면이 화려하다. 시공간을 기록한 강동주의 드로잉과 다양한 존재성을 상기시키는 최하늘의 조각도 인상적이다.

그냥 전시장에서 만난다면 작품을 해석하느라 난감했을터이나, 퍼포머들의 움직임과 독백으로 짜여진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작품과 작품이 맺은 관계를 이해하게 된다. 연극적 서사구조와 공간연출을 시각예술 전시와 접목시킨 다원예술 프로젝트의 장점이다. 전시는 6월 13일까지 열리지만, 라이브 퍼포먼스는 총 10회만 열린다.

이한빛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