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스타트업이 어엿한 기업으로 뿌리를 내리기까지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시간과 자금이다. 아이디어와 기술력이 매출을 일으킬 수 있는 하나의 상품으로 시장의 인정을 받기까지 필요한 시간, 그리고 그 시간에 도달하기까지 회사를 지탱해줄 수 있는 게 바로 자금이다.

창업 2년차를 맞은 한 모빌리티 관련 벤처 창업자 A대표는 요즘 최대 고민을 ‘자금’이라고 토로했다. 창업 전 마련했던 ‘총알’이 나름 충분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쉽지 않은 사업화 과정에 슬슬 곳간 걱정을 해야 할 시기가 왔다는 것이다. 이런 시점에 투자자가 나타났다. 하지만 마냥 반가울 수만은 없었다. 이 투자자는 거액의 투자를 조건으로 일정 지분을 요구했다. 벤처캐피털이나 개인투자자들이 지분을 대가로 투자금을 넣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다. 당장 자금이 아쉬웠지만 A대표는 고심 끝에 투자유치 시점을 잠시 미루기로 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복수의결권’ 법안 상정의 추이를 지켜보기로 한 것. 지분을 넘기는 것을 신중하게 고려하겠다고 했다. 나아가 향후 증시 상장이 가능할 만큼 회사가 성장했을 때 혹시 모를 경영권 침해 우려를 사전에 대비하자는 취지에서다.

벤처·스타트업 기업들이 지분투자를 고민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회사 지분을 넘겨받은 투자자들의 경영 개입·간섭이 심심지 않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한 번 투자계약이 체결되면 이를 되돌리긴 쉽지 않다. 창업자의 회사 경영플랜과 이를 뒷받침할 결단력을 발휘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 투자자들이 자금 회수를 위해 창업자에 실적을 강요하고, 이 때문에 연구·개발 역량이 약화되는 안타까운 사례는 현장에서 숱하게 일어난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발의한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법률안’, 이른바 ‘복수의결권’ 법안은 벤처·스타트업 기업의 외부 투자자들이 경영권을 흔드는 역효과를 방지하기 위해 추진되는 안전장치다.

하지만 복수의결권 법안은 발의된 지 넉 달 넘게 아직 상임위 소위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다. 벤처 관련 단체, 기관은 물론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입법에 가속도를 내 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복수의결권의 발목을 잡는 목소리들이 있다. 일부 야당과 시민·노동단체, 학계에선 복수의결권이 재벌 세습의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며 법안 개정을 반대한다. 대상이 되는 기업을 ‘비상장 벤처기업’으로, 주당 10개까지 복수의결권을 허용한다는 단서 조항도 마련돼 있지만 ‘친(親)재벌 법안’이라는 주장만 되풀이한다.

경영권이 위협받게 되면 제아무리 대기업이라도 이를 방어하는 데 급급할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경영활동에 전념하기 힘들다. 벤처·스타트업은 말할 것도 없다.

지난해 벤처투자액이 역대 최대인 4조3000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벤처업계는 이미 뜨겁게 달아올랐다. ‘제2의 벤처붐’이 현실화되고 있다. “복수의결권은 재벌을 위한게 아니다”라는 창업자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