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만3000여점 국립기관에 기증

국보·보물 등 지정문화재는 국립박물관에

근현대 미술작품·서양미술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국민 문화향유권 확대 기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가로 5미터에 달하는 대작이다. 중앙일보 사옥에 전시됐던 작품이다. 달과 여인, 항아리, 꽃 등 김환기가 자주 사용하는 다양한 도상이 매끄럽게 잘 연결된 수작으로 꼽힌다. [사진제공=삼성그룹]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가로 5미터에 달하는 대작이다. 중앙일보 사옥에 전시됐던 작품이다. 달과 여인, 항아리, 꽃 등 김환기가 자주 사용하는 다양한 도상이 매끄럽게 잘 연결된 수작으로 꼽힌다. [사진제공=삼성그룹]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비록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갈지라도 이는 인류문화의 미래를 위한 것으로서 우리 모두의 시대적 의무라고 생각한다."(이건희, 2004년 리움미술관 개관식에서)

국보급 문화재와 국내외 유명작가의 수작들이 대거 포진한 '이건희 컬렉션'이 국민 품에 안겼다. 삼성그룹은 "국보 등 지정문화재가 다수 포함된 고(故) 이건희 회장 소유의 고미술품과 세계적 서양화 작품, 국내 유명작가 근대미술품 등 총 2만3000여점을 국립기관에 기증한다"고 28일 밝혔다. 이 같은 대규모 기증은 사상 처음 있는 것으로, 국내 문화자산 보호는 물론 미술사 연구와 국민 문화향유권을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최고 회화작품으로 꼽히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고(故) 이건희 회장 유족은 해당 작품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키로 했다. 유족은 국보와 보물을 포함한 문화재, 근현대미술품 등 2만3000여점을 국가기관에 기증, 문화유산을 아끼던 이건희 회장의 생전 의지를 지켜가기로 했다. [사진=헤럴드DB]
조선시대 최고 회화작품으로 꼽히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고(故) 이건희 회장 유족은 해당 작품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키로 했다. 유족은 국보와 보물을 포함한 문화재, 근현대미술품 등 2만3000여점을 국가기관에 기증, 문화유산을 아끼던 이건희 회장의 생전 의지를 지켜가기로 했다. [사진=헤럴드DB]

◆국보급 문화재는 국립박물관으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 고려 불화 '천수관음 보살도'(보물 2015호) 등 지정문화재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을 비롯해 고서·고지도 등 개인 소장품 2만1600여점은 국립박물관에 기증된다.

특히 중국으로 흘러 들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삼성가로 들어온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조선시대 최고의 회화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이건희 컬렉션’ 고미술품 감정에 참여한 A씨는 "진경산수가 완벽하게 무르익은 시기의 최고의 회화이자 동아시아 최고의 작품이다. '리움'의 상징적인 소장품이었는데 이것을 국가기관에 기증한다는 것은 유족들의 큰 결심"이라고 평했다. 이외에도 국보 235호인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도 기증된다. 고려후기 감색 종이에 금가루 아교를 개어 쓴 '화엄경'으로, 일본에 유출됐던 것을 다시 사들인 작품이다. 금동보살 삼존상, 금동보살 입상 등 불교 조각과 백자발, 청자상감 모란문 발우 및 접시 등 도자도 모두 국립박물관으로 이전한다.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초기작이자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삼성그룹 제공]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초기작이자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삼성그룹 제공]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삼성그룹 제공]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삼성그룹 제공]

◆한국 근현대 주요 작품과 서양 미술품 일부는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이중섭의 '황소', 장욱진의 '소녀’·‘나룻배' 등 근대미술품 1600여점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다. 서양 근현대작품 중에서는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호안 미로의 '구성',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 및 샤갈, 피카소, 르누아르, 고갱, 피사로 등의 작품도 모두 국립현대미술관으로 향한다.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는 가로 5m에 달하는 대작이다. 호암미술관에서 관리했으며 중앙일보사에도 걸려 있었던 작품이다. 항아리와 여인들, 학, 구름 등 다양한 도상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병렬적이면서도 앞뒤의 깊이감이 느껴지는 수작으로 꼽힌다. 박수근의 '절구질 하는 여인'은 작가 대표작 중 대표작으로 꼽힌다. 유작전은 물론 초창기 개인전부터 중요 전시에 모두 나왔던 작품이다. 장욱진의 '나룻배'는 부산 피난 시절 제작됐다. 서정적으로 굉장히 아름답지만 처참한 현실을 반영한 작업으로 유명하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전되는 작품 모두가 시기적으로나 작가 작업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작품들"이라며 "국현 컬렉션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으로 기대했다.

서양 근현대작품들도 구하기 어려운 수작들이다. 특히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은 모네의 다른 연못 시리즈 중에서도 도상이 콤팩트하게 좋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재계 관계자는 "해외 유출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던 서양 유명 근대미술품까지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고인의 뜻을 살릴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금동보살 입상. [삼성그룹 제공]
금동보살 입상. [삼성그룹 제공]
청자상감 모란문 발우 및 접시. [삼성그룹 제공]
청자상감 모란문 발우 및 접시. [삼성그룹 제공]

◆일부 작품은 지방 미술관으로

한국 근대미술에 큰 족적을 남긴 작가들의 작품 중 일부는 광주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등 작가 연고지의 지자체 미술관과 이중섭미술관, 박수근미술관 등 작가 미술관에 기증된다. 전남도립미술관에는 의재 허백련과 김환기·천경자의 일부 작품과 유영국의 작품이, 대구미술관에는 이인성의 여인 초상과 장미 그림 등이 들어간다. 최은주 대구미술관장은 "지역 미술관으로 지역 작가들 작품을 꾸준히 수집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한계가 있었다. 이번 기증으로 지역 작가 컬렉션을 수준급으로 완성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