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몸과 타인들의 파티(카먼 마리아 마차도 지음,엄일녀 옮김, 문학동네)=여성에게 몸은 어떤 의미인지, 전복적인 상상력과 형식에 구애되지 않는 이야기 방식으로 펼쳐낸 소설집. 미국문단의 총아 마차도는 이 데뷔소설집으로 일약 주목받으며 다수의 신인상과 함께,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함께 뉴욕타임스 선정 ‘21세기에 소설을 읽고 쓰는 길을 만들어가는 여성 작가의 주목할 만한 책 15권’에 뽑히기도 했다. 제목은 여성의 몸이 여성 스스로 기쁨과 쾌락을 경험하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당사자를 제외한 타인이 쾌락을 추구하고 즐기는 파티의 대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단편 ‘예쁜이수술’의 화자인 나는 늘 목에 초록색 리본을 매고 있다. 사랑하는 남편, 아이조차 만질 수 없는 것이다. 무슨 숨기는 게 있느냐고 남편이 묻지만 단지 당신 것이 아니라고 여자는 말한다. 남자는 몇 번이고 리본을 풀려보려다 저지를 당하고, 여자는 결국 허락을 하지만 비극적 결말로 이어진다. 화자는 소설에서 수 많은 여자들의 얘기를 들려주는데, 남편을 위해 자신의 간을 요리한 여자 등 모두 비참한 결말로 이어진다. 리본은 욕망과 통제,침범을 상징하며, 주도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여긴 여자도 결국 파국을 맞는다. 마차도는 이 소설집에서 섹스와 죽음을 주요 테마로 삼는다.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한 ‘목록’에선 바이러스로 종말이 다가오는 가운데 끊임없이 몸과 마음을 나눌 사람을 찾아 나서는 여성의 얘기가, ‘현실의 여자들은 몸이 있다’ 에선 시스젠더 여성들의 몸이 점점 투명해져 소멸되는 얘기를 그려냈다.

▶공항철도(최영미 지음,이미출판사)=시력 30년을 맞은 최영미 시인의 7번째 시집.거침없는 직설화법으로 우리 사회 허위와 부조리를 통쾌하게 드러내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능란한 뒤집기 기술로 거짓의 표양들을 선명히 드러낸다. 표제시 ‘공항철도’는 공항철도를 잘못 탔다가 우연히 얻은 시로 짧지만 함의가 넓다. ‘눈을 감았다/떠 보니/한강이/거꾸로 흐른다//뒤로 가는 열차에/내가 탔구나’(‘공항 철도’). 시집은 늦은 첫사랑에 바치는 ‘너무 늦은 첫눈’, 날씨에서 시작해 시대에 대한 발언으로 이어지는 ‘3월’, 부동산 문제를 다룬 ‘Truth’, 한강이 거꾸로 흐르는 날카로운 현실인식을 담은 ‘공항철도’ 등으로 이어지며, 숨막히는 코로나 시대와 가치전도된 사회를 직접 겨냥한다.코로나 시대의 풍경은 이번 시집의 배경을 이룬다, 함께 냄비를 두드리며 코로나를 위로한 이태리 사랑을 담은 ‘벨라 차오르’, 코로나 앞에 단순해진 ‘코로나 평등’ ‘면회금지’ 등이 일상을 기록한다.50여편의 시 가운데는 ‘자기만의 방’ 등 시인의 삶을 돌아보는 시들, 상처로 회귀하는 본능을 그린 시들도 많다. 시인은 마지막 시 ‘최후 진술’에서 아직 다 말하지 못한 진실이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문학평론가 고종석은 “자지레한 에피소드들은 순식간에 적분돼, 여러 갈래로 갈라졌던 정치와 역사의 원시함수로 복원된다”며, “최영미는 자신이 정치시인인 줄 모르는 정치시인이다”고 추천사에 썼다.

▶방구석 시간여행자를 위한 종횡무진 역사 가이드(카트린 파시히 외 지음, 장윤경 옮김, 부키)=코로나 19로 해외여행이 막히면서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노마드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떠날 수 없다면 방구석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이 책은 수천 년 인류 역사를 여행하는 신개념 안내서다. 익룡이 하늘을 나는 시대로도, 스톤헨지의 비밀이 숨겨진 현장으로, 혹은 우주가 탄생하는 찰나의 순간으로도 갈 수 있다. 중세 마니아들을 위한 중세 안내서도 있다. 다만 냄새와 위생은 각오해야 한다. 잘 씻지 않을 뿐 더러 간혹 씻을 때에도 대야에 얼굴과 손을 넣어 여럿이 함께 사용하는 게 기본. 식수도 위험하다. 동물의 배설물에서 나온 병원균, 끓여도 제거되지 않는 중금속, 산업 폐수 등에 오염돼 있기 십상이다. 반면 아이슬란드는 권할 만하다. 천연 온천이 곳곳에 있어 씻을 수 있고 빨래도 가능하다. 이미 상당히 발전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여성이 토지, 책, 필사본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이혼이 가능하고 혼인 지참금도 돌려달라 요구할 수 있다. 중세를 여행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화폐가 지역마다 달라 거스름돈을 돌려받는 것만 해도 머리 아프다. 대신 귀금속이나 금붙이로 계산이 가능하다. 아웃도어 열성팬에게는 플라이스토세가 가장 매력적인 여행지다. 지구의 마지막 빙기가 속한 플라이스토세의 지질은 변화무쌍하다. 누구도 손대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자연경관을 만날 유일한 기회다. 흥미로운 이 안내서는 가볼 만한 곳을 안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류의 역사와 시공간의 과학을 아울러내며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윤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