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동일 사안에 대한 정반대 판결은 아마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이지 않을까 싶다. 올해 초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 김정곤)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그로부터 3개월이 흐른 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부장 민성철)는 고(故) 곽예남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각하했다. 사실상 패소 판결을 내린 셈이다.
내용상 동일한 사안에 대해 이렇게 정반대 판결을 내놓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이번 판결의 핵심 기준이 된 ‘국가 면제’ 원칙에 대해서도 양 재판부는 정반대 입장을 보였다. 원고 승소 판결을 한 재판부는 주권국가의 행위는 타국의 재판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국가 면제 원칙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기각 판결 재판부는 이 원칙을 인정하며 손해배상 청구가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반응도 엇갈렸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승소 판결에는 ‘정의’라는 평가가 붙었지만 기각 판결에 대해서는 ‘굴종’이라는 비난이 제기되기도 했다.
동일한 사안에 대한 정반대의 판결은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비난받을 소지가 크다. 법관에 따라 정반대의 판결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으로 법치주의의 보루인 사법부의 신뢰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법부의 신뢰 훼손은 정반대 판결뿐 아니다. 고무줄 판결도 마찬가지다. 사법농단 관련 법원행정처의 재판 관여 권한을 둘러싼 엇갈린 판결, 선거사범에 대한 재판이나 전관예우 문제, 작량감경 등 법관 재량이 작용하는 부분에서는 어김없이 고무줄 판결이 문제로 지적돼왔다. 판사도 사람이기에 주관이나 가치관이 판결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다. 판사들이 판결을 내리면서 자주 인용하는 ‘사회통념’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판사의 마음’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판결이 항상 같을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동일 사안에 대한 정반대 판결이나 고무줄 판결은 국민이 갖는 사회통념과는 거리가 있다. 특히 고무줄 판결에 대한 비난은 재판 당사자가 될 때 더 커진다. 판결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판결에 대한 평가도 극명하게 엇갈릴 수밖에 없어서다.
최근 필자는 과거 정권에서 국무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정권이 바뀌면서 교도소에 복역한 인물을 만났다. 장관직 수행을 끝으로 은퇴 이후의 삶을 그렸으나 너무나 억울한 판결로 새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자신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사화(士禍)에 비유하기도 했다. 어떤 죄를 지었는지 따지지 않고 어느 진영인가에 따라 죄의 유무가 갈렸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는 인공지능(AI)판사의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AI판사를 도입해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편에 기울어지는 인간(人間) 판사의 편향재판을 받지 않게 하는 현실적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야기가 판결을 인정하지 않는 전직 국무위원의 하소연으로만 들리지 않는 것은 그만큼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크지 않는 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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