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형·열처리·주물·도금·용접·소성 등 뿌리산업

한달 뒤면 주 52시간제 시행 소용돌이 속으로

반도체쇼크에 원자재값…전방 업황도 불투명

고질적 구인난·기존인력 고령화 겹쳐 발만 동동

대구 성서산업단지에 있는 금형기업인 화신테크의 작업장. [화신테크 제공]
대구 성서산업단지에 있는 금형기업인 화신테크의 작업장. [화신테크 제공]

#1.주 52시간제에 대비해 지난해 3교대 근무를 했던 금형업체 A사는 올해 2교대로 되돌아갔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실질임금이 줄자 외국인 근로자들이 다른 업체로 빠져나가 3개조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

#2.열처리업체 B사는 최근 3개였던 생산라인을 2개로 줄였다. 3개 라인으론 주 52시간제에 따른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계산이 나왔다. “라인을 줄인만큼 일감을 늘리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현상유지도 어렵다”는 게 B사의 설명이다.

전자, 자동차, 조선 등 한국 제조업을 떠받치는 뿌리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반도체·부품 부족과 원자재값 급등으로 업황이 휘청이는 와중에 주 52시간제의 50인미만 확대로 직격탄를 맞게 됐다. ▶관련 기사 3면

뿌리산업은 주조·금형·소성가공·열처리·표면처리·용접 등 6개 분야. 제조업 경기와 밀접한 만큼 최근 반도체·부품 부족, 원자재값 급등도 업황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반도체 수급난으로 가전, 완성차에서 생산량을 줄이자 여기에 공급하던 1~3차 벤더들도 차례로 일감 감소를 겪고 있다. 원자재 가격 급등은 하청공급 특성상 뿌리기업에 더욱 악재다. 원청 대기업을 상대로 가격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다보니 원가상승 요인을 납품가에 반영할 수 없기 때문.

중소기업중앙회가 조사한 6월 업황전망 경기전망지수(SBHI)에서도 이는 확인되됐다. 6월 SBHI는 80.5로, 올해 들어 처음으로 하락세를 기록했다. 중앙회는 원자재가 급등과 해운, 물류 차질 등의 영향으로 체감경기가 악화됐다고 분석했다. 중기들이 꼽은 주요 애로 요인 중 원자재 가격 상승이 40.3%, 인건비 상승이 39.2%를 차지했다.

여기에 주 52시간제는 뿌리산업의 고질병인 구인난을 부채질할 수밖에 없다. 이미 고령화된 현장의 숙련기술이 대가 끊길 것이란 우려도 있다.

뿌리산업은 불연속, 부정기, 비정형 작업이 특징이다. 그래서 대개 24시간 공장을 가동해 2교대로 근무한다. 주 52시간제를 실시하려면 인력을 추가로 뽑아야한다. 알려진 대로 인력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외국인 근로자 입국이 하루 50명으로 제한됐다. 이종길 금속열처리조합 전무는 “50인미만 소기업은 생산직의 70%가 외국인이다. 신청하고 1년을 기다려도 근로자를 배정받지 못하는데, 한 달 뒤 주 52시간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 호소했다.

뿌리기업들 사이에선 기존 인력 ‘엑소더스’ 걱정도 한다. 근로단축으로 실질임금이 줄어든 직원들이 야·특근수당을 받을 수 있는 업체로 옮길 것이란 우려다. 뿌리산업계는 근로자들이 연말까지 노사합의 전제 하에 주 60시간 근무할 수 있는 30인미만 기업으로 옮기는 일이 빈번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 52시간제 땐 근로자들은 각종 수당을 기대할 수 없다.

중소기업계는 일본처럼 노사합의가 이뤄지면 초과근무도 할 수 있게 해달라 건의해 왔다. 하지만 논의는 없다. 궁여지책으로 외국인 근로자 입국이 원활해질 때까지 뿌리기업만이라도 주 52시간 도입을 유예해달라 호소했지만 이 역시 메아리가 없다.

도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