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여성부사관·장교 5명 인터뷰

사건 발생해도 조직적 회유·은폐

군내 폐쇄적 네트워크 사건 축소

회식 상급자 옆자리 여군은 일상

제도 장치를 조직문화 못 따라가

성추행 피해 신고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의 영정과 위패가 3일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 놓여 있다. [연합]
성추행 피해 신고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의 영정과 위패가 3일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 놓여 있다. [연합]

“우리끼리 군대는 ‘피를 봐야 바뀌는 곳’이라고 얘기해요.”

헤럴드경제가 만난 한 전직 여성 부사관의 말이다. 전역 해군 장교인 또 다른 여성은 “성추행 피해를 겪지 않은 사람(여군)은 없다”며 “군을 빠져나오거나 죽지 않는 이상 성폭력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일이라는 게 우리(여군) 사이의 인식”이라고 말했다.

공군의 한 여중사가 성추행을 당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 공분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육·해·공군을 망라해 전직 부사관·장교 출신 30대 여성 5명의 이야기를 3~4일 이틀간에 걸쳐 전화인터뷰를 통해 들었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여군에 대한 군내 성폭력은 심각했다. ▶관련기사 6면

사건이 발생해도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회유와 은폐, 협박 때문에 해결이 불가능했다. 제도는 무용지물이었다. 이들은 “공군 성폭력 피해자는 ‘내가 죽음으로 되갚아주겠다’는 원통한 마음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성폭력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국방부는 새로운 대책을 발표했다. 2013년 육군 직속상관에게 성추행 당한 여군 대위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자 군 당국은 ‘성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2017년 해군에서는 상급자인 대령에게 성추행을 당한 여군 대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가 다시 발생했다. 군 당국은 ‘원스트라이크 아웃’ 원칙을 세웠지만, 2021년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다 회유와 은폐 등 2차 가해에 시달린 공군 여성 중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헤럴드경제가 취재한 전직 부사관·장교들 역시 ‘성희롱 및 성추행 피해자’였다. 이들은 신고 대신 직책을 내려놓는 선택을 했다. “신고를 하려는 순간 회유가 들어온다. ‘진급을 하고 싶으면 넘어가자’고 한다. 전 부대가 영향을 받게 되니 차라리 피해자에게 재갈을 물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그게 먹혔다.” 중사 시절 회식자리에 불려갔다가 대령 옆자리에 앉혀져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A 씨는 이같이 말했다. A씨는 “회식자리라고 해도 대령 옆에 여성 중사를 앉히는 게 정상적이진 않다”며 “하지만 회식 때마다 상급자 옆에 신입 여성 하사나 여성 부사관을 앉히는 문화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공군 장교 출신의 B씨는 “이미 군내 제도적 장치는 충분하게 마련됐다. 매뉴얼을 지키기만 했다면 이번처럼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며 “제도를 군 내부 조직문화가 따라가지 못해 피해가 반복됐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공군 부사관 출신의 C씨는 청와대 등 국방부 외부조직이 관여하지 않는 이상 문제해결이 어렵다고 봤다. C 씨는 “은폐시도에 수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원인을 살펴보면 대부분 군내 폐쇄적인 네트워크가 있다”며 “결국 군경찰과 검찰도 자신의 상급자가 하는 말을 따르기 때문에 군내 네트워크가 사건을 축소하는 데 영향을 끼쳤을 거라고 본다”고 해석했다.

해군 장교 출신의 D 씨는 “정규직 성고충상담원의 경우, 고참 여군인 경우가 많은데, 이들 역시 폐쇄적이고 남성중심적인 군 문화에서 생존해왔기 때문에 가해자에 더 관대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또 “외부기관의 성고충상담원은 계약직이라 연장이 되려면 군 상급자의 인사고과를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결국 문제가 반복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군 소속을 밝히기를 거부한 장교 출신의 E 씨는 “성폭력 문제뿐만이 아니다. 군 모든 악습을 두고 내부적으로는 ‘피를 봐야지만 바뀐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결국 사람이 죽어야 군사경찰도 처음으로 피의자를 포토라인에 세웠다”고 꼬집었다.

문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