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10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서울대생 박종철의 죽음은 검찰과 경찰의 대립 과정에서 세상에 알려졌다. 경찰 대공수사부서 권력이 막강할 때였다. 청와대의 압력에도 검찰이 시신 부검을 강행하면서 사망 원인이 밝혀졌다.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 최환 부장검사가 부검을 하도록 한 데에는 여러 해석이 있다. 원칙대로 일을 처리한 사안이지만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수사지휘를 잘못해 검찰 위상이 크게 추락한 점을 만회하기 위한 시도였다는 시각도 있다. 주목할 것은 동기가 아니라 결과다. 어찌 됐든 최 부장검사는 직업적 양심을 버리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1987년 개헌을 통해 현행 헌법이 제정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구호만 있던 ‘검찰개혁’이 가시화된 것은 2019년 이후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계기로 검찰과 청와대 사이가 틀어졌다. 조 전 장관은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시절,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발표했지만 정작 검찰의 직접 수사 기능은 사실상 변한 게 없었다. 이전 정권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적폐수사’가 한창일 때였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하고, 기획·공안 부서 주요 보직에도 특수수사 전문가들을 배치한 검찰 인사를 승인한 것도 청와대였다.

그렇게 검찰 수사를 독려하던 청와대는 자신들에 불리한 수사가 시작되자 ‘수사와 기소 분리’를 앞세워 검찰 힘 빼기에 나섰다. 역대 한 차례만 행사됐던 수사지휘권도 3차례나 남발됐다. 수사를 더 열심히 하라고 칼자루를 쥐여주다가 대통령 임기 말이 되자 검찰이 수사를 하려면 법무부 장관 승인을 받으라는 얘기까지 꺼낸다. 하도 황당한 주장이라 정말 제도를 그렇게 만들 생각이 있는 것인지, 어차피 안 될 것을 양보할 생색거리로 던져보는 것인지 의구심마저 든다.

검찰의 직접 수사 총량을 줄이는 것은 큰 틀에서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수사권한이 커진 경찰에 대한 통제는 더 강화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 가고 있다. 경찰이 자체종결권을 갖고, 검찰의 수사지휘 기능은 약해졌으며 2차 수사도 제한한다. 경찰이든, 검찰이든 어느 한쪽을 신뢰해선 안 된다. 경찰은 폭넓은 수사권한을 갖는 대신 검찰의 통제를 받아야 하며, 검찰 역시 압수수색 단계부터 영장을 통해 법원의 견제를 받아야 한다.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은 사안의 중대성보다 형사 시스템의 부실화 관점에서 심각하게 봐야 한다.

더불어 사건 처리 과정을 비공개하려는 움직임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공소장 비공개는 공개재판 원칙과도 어긋난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국가기관이 지켜야 할 원리이지, 보도 통제 수단으로 남용돼서는 안 된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검찰을 출입하던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의 2단짜리 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요즘 여권의 화법으로 표현하면 전형적인 ‘검찰 받아쓰기’였다. 하지만 이 기사의 가치를 폄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학생을 고문한 경찰의 무죄추정이 깨어진 사례라고 비판하는 일도 없다. 취재원이 누구인지 색출하라고 하지도 않았다.

국가기관을 선하다고 믿지 마라. 그게 1987년 헌법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