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해주최씨 집성촌

강진 신기바을 영농조합 ‘담가온’
강진 신기바을 영농조합 ‘담가온’

고려 초기인 986년 황해도 해주 지역 호장 최온(해주최씨 시조)의 아들로 태어난 최충은 1068년까지 장수하며 많은 인문학 성과를 일궈낸 현자, ‘해동공자’이다.

“집안대대로 좋은 물건은 없으나, 귀중한 보물만은 간직해 왔다. 문장을 비단으로 여겼고, 덕행이 곧 보석이니라. 오늘날 서로에게 이르는 말을 훗날 부디 잊지 말아라. 그러면 나라에 귀중히 쓰이게 되며 대대로 더욱 번창하리라.”

그가 남긴 가훈이 ‘계이자시(戒二子詩:두 아들에게 주는 시)’는 지금도 강진 해주최씨 집안에서 그대로 이어 실천하고 있다. 1000년 간 잘 정립한 인문학의 실천은 나눔과 음식문화의 발전으로도 이어졌다. 종가는 흉년에 고을 공동체의 백성들을 구휼하고, 종가 및 마을 전통음식을 계승했다.

전남 강진군 군동면 신기마을 해주최씨 집성촌에서는 마을 공동으로 강진전통된장영농조합 ‘담가온’을 운영하고 있다.

고려 총리격인 문하시중 최충은 왕으로부터 팔걸이의자와 지팡이를 하사받았을 정도로 평생 국정과 학문을 돌보았다.

예부상서를 지낸 5세손 최약은 고려 예종이 정사를 돌보지 않고 대동강 연회에 몰두하자 돌직구 간언을 해 중지시켰다. 말직으로 쫓겨나면서 쓴 시가 동문선에 실렸다.

보한집으로 유명한 최자(1188~ 1260)는 8세손이다. 충청 전라 안찰사·한림학사승지를 거쳐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직을 수행했다. 보한집은 이규보의 문학을 계승·보충한 속파한집이다.

14세손 최만리(?~1445)는 강원도관찰사를 거쳐 집현전부제학을 하면서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했으나, 한자음 연구서 저술방법론을 둘러싸고 세종대왕과 의견을 달리하면서 사직했고, 나중에 청백리에 녹선됐다. 그의 아들 최각(1426~1505)은 보령현감을 역임하고 현감공파를 열었다. 최각의 누이는 율곡 이이의 증조부인 이의석과 결혼했다.

19세 최우(1543~1613)는 임진왜란 때 고경명의 의병군에 참여하고, 명나라 지원군의 향도장으로 활약해 공신에 올랐으며, 행담양도호부사를 역임하고 강진에 입향했다.

최우의 아들 최유건(?~?)은 무과에 급제하고 판관을 지내고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됐다. 도탄에 빠진 강진군민 구제를 청원하는 상소문 ‘청차강진수소’가 칠실유고에 남아있다.

함영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