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수기모음집 ‘내 몸이 증거다’ 출간

‘엄마, 우리는 충분한 사과와 보상을 받았나요?’

열세 살 아들 질문에 해줄 말이 없어 눈시울

하반신 마비에도 “악착같이 재활해 책임 묻겠다”

안녕하세요, 저는 평범한 여중생입니다. 항상 생각하지만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학교에서 얼마나 행복하게 뛰어다녔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애초에 사질 않았더라면 병원에 있을 시간이 없었고 제 인생은 더 행복했을까요? 아니, 덜 아팠을까요?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눈물로 써내려간 수기 모음집 중 박교진 가족의 이야기다. 피해자 박양은 “제조하신 분도 누군가의 가족, 누군가의 정말 소중한 분일 텐데 왜 이런 식으로 만들었나요”라며 “가습기면 정말 정화되고 독성물질이 아닌 걸 넣어 연구하셨어야지요. 역지사지해보면 정말 가슴이 아리지 않을까요?”라고 적었다.

가습기살균제전국네트워크와 가습기살균제참사10주기비상행동은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내 몸이 증거다’ 출판 간담회를 열었다. 총 스물 다섯 가족, 총 63명의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겼다. 간담회에 모인 피해자들은 몸과 마음의 피해가 지속되고 있다며 진상 규명과 피해 회복을 위한 관심을 호소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입은 두 자녀를 둔 이현옥 씨의 큰아들은 벌써 열세 살이 됐다. 이씨의 두 자녀는 폐렴, 비염, 폐 기능 저하 등을, 이씨는 만성폐쇄성 폐질환(COPD) 등을 겪고 있다. 당시 이씨의 큰아들은 급성 폐렴으로 응급실에서 중환자실까지 갈 정도로 상태가 심했으나 입원 치료 후 다행히 퇴원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상처는 이씨와 아이들의 마음에도 남았다. 이씨의 큰아들은 ADHD, 불안장애로 이씨는 우울증, 공황장애로 치료를 받고 있다. 이씨는 자녀들이 ‘엄마, 왜 내 몸은 이렇게 아파요?’, ‘우리는 충분한 사과와 보상을 받았나요?’라고 물어볼 때마다 해줄 얘기가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피해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지속·악화되는데도 치료할 방도를 모른다는 점이다. 이씨는 “제일 화난 건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한 것”이라며 “잠시 동안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알리는 활동을 잊고 싶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임종한 인하대 보건대학원장을 만나면서 조금씩 희망을 갖고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수기를 쓰게 됐다. 임 원장은 이 책의 의학자문 내용을 맡고, 피해자들을 지은이로 직접 섭외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수기를 담은 ‘내 몸이 증거다’ 출판 간담회가 열린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증세가 악화된 피해자 조순미 씨가 화상으로 참여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제공]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수기를 담은 ‘내 몸이 증거다’ 출판 간담회가 열린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증세가 악화된 피해자 조순미 씨가 화상으로 참여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제공]

최근 상태가 악화돼 거동을 할 수 없게 된 조순미 씨는 산소 호흡기를 끼고 누운 채 비대면 방식으로 참여했다. 조씨는 “이 책에 조금 더 성의껏 내 감정과 경험을 서술하고 싶었으나 글을 쓰는 동안 악회되는 시기라 그러지 못했다”며 “손에 힘이 빠지고 제 지난 날의 다이어리에 있는 글조차 옮기기 오려워 13여년 투병하며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하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 조씨는 “처음에는 씩씩하게 산소통을 메고 다니면서 여러분들과 시위도, 회의도 하러 다녔지만 어느 날부터 서 있기가 너무 힘들었다”며 “핸드카를 밀고 다니다가 그 다음에는 휠체어를 타다가 지금은 하반신 마비로 판정이 나 누운 채로 퇴원하게 됐다”고 했다.

조씨는 전신에 나타나는 후유 질환을 설명하면서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다. 조씨는 천식, 폐렴, 독성간염, 면역세포 감소로 저감마글로블린 혈증, 양성종양을 겪고, 근골격계·신경계통 통증과 염증·다발성근염 등으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그러면서 조씨는 “모든 국민들에게 기억되는 그날까지 악착같이 재활할 거고 열심히 노력해 두 발로 걸어서 또 만날 날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가해 기업과 무책임한 정부에 잘못을 분명히 물을 테니 가슴에 남겨두었던 아픔은 이후에 서로 어루만져주기로 하자”고 말을 마쳤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수기를 담은 ‘내 몸이 증거다’ 표지 [참여연대 제공]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수기를 담은 ‘내 몸이 증거다’ 표지 [참여연대 제공]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에 따르면 환경부에 접수된 피해자는 지난 11일을 기준으로 7476명에 달한다. 이중 1663명은 사망했다.

김동현 한림대 의과대학 교수는 추천사에서 “자신들의 몸을 던져 만들어낸 질문지에 이제 우리 사회가 답을 내어야 한다”며 “한국 사회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의미는 개인에서 가족으로, 피해의 범위는 신체에서 삶의 안녕감으로, 피해의 해결과 극복은 경제적 보상의 현실화에서 안전사회를 위한 장기적 연대로 확장돼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홍정 목사도 “최대의 화학제품 사고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규명하고 제대로 된 피해자 보상의 길을 열어야 한다”며 “이제 과학적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가습기살균제 폐 손상의 강을 건너, 가습기살균제 증후군에 대한 축적된 연구성과를 토대로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해결방안을 새롭게 내놓아야 한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