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7 초청서 한국의 달라진 위상 실감

국제질서 기여 지분...기대받는 국가로

외시 첫 여성수석 등 최초 기록 수두룩

36년 외교관 생활 ‘소프트파워’ 주역

한국 하면 핵을 떠올렸던 시절 있었죠

지금은 K-팝·기후변화 등 폭넓은 관심

‘역사를 만드는 일에 참여’ 하고픈 소망

글로벌 위상 강화 현장서 활약 큰 보람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박은하 전 영국대사가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박은하 전 영국대사가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주요 7개국(G7)이든 주요 20개국(G20)이든 초청국가로 가면 정식 회원국과 위치에 있어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번 영국에서 열린 G7에서 한국의 위치는 달랐어요. 논의하는 수준이나 회원국들이 바라는 관여라든가 회원국에 버금가는 기대를 보면서 한국이 국제사회의 질서를 만들어 나갈 역할도 있고, 그에 맞는 기대도 받는 나라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일 헤럴드스퀘어에서 만난 박은하(58) 전 주영 대한민국 대사는 G7 정상회담 당시 현장을 이같이 말했다.

박 전 대사는 지난 36년 간 외교관으로 활약하면서 ‘최초’라는 수식을 달고 다녔다. 여성 최초 외무고시(1985년·19회) 수석 합격자로 공직에 발을 들여놓았다. 2018년엔 주영 한국 대사로 임명됐는데, 여성외교관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주재대사를 맡게 된 것도 역시 최초다. ‘최초 부부 외교관’이기도 하다. 박 전 대사의 남편은 김원수 전 유엔사무차장 겸 군축고위대표(외시 12회)다.

하지만 ‘최초’라는 수식 못지 않게 박 전 대사를 수식하는 하는 표현으로는 ‘가치외교’가 있다. 국제협력개발국장에서부터 공공외교대사까지 비전통 외교분야에서 활약한 그는 한국의 이른바 ‘소프트파워’(연성권력)를 키운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외교부 개발협력국장이자 준비위원장으로서 지난 2011년 부산개발원조총회를 개최했을 때 박 전 대사는 대외원조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전 대사는 “부산개발원조 총회는 수원국(받는 나라)과 공여국(지원하는 나라)뿐 아니라 양측의 민간단체와 개인 등이 모여 포괄적 관계를 형성한 최초의 회의였어요”고 설명했다.

이어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거듭난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였고, 덕분에 새로운 규범을 만들 수 있었다. 외교관으로서 굉장히 보람찬 일이었습니다”고 했다.

한국 K팝의 인기와 문화교류도 박 전 대사에게는 많은 의미로 다가온다. 박 전 대사는 외교부가 처음 ‘공공외교’를 정책으로 구현하기 위해 ‘국민외교센터’라는 플랫폼을 만든 당사자이기도 하다.

“결국 외교 분야에서 국민들이 적극 소통하고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며 “국민외교센터가 활성화돼 큰 보람을 느낍니다”고 했다.

박 전 대사는 성공적인 공공외교의 조건으로 ‘소통’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공외교는 결국 다른나라가 나를 지지할 수 있도록 저변을 넓히는 작업”이라며 “정책이 됐든 문화가 됐든 상대방과 함께 비전과 가치를 만들고 좋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가의 소프트파워를 강화할 수 있어요”고 말했다.

한국의 소프트파워 역량이 발전하면서 지난 3년 사이 한국을 바라보는 영국의 시선도 크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한국을 핵전쟁 위험이 있는 나라로 인식하거나, 아이돌 트레이닝 과정을 두고 ‘자유를 억압한다’며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았어요. 하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다양한 문화를 융합할 수 있는 한국을 보면서 ‘독창적인 문화’, ‘포용적인 국가’라는 인식으로 많이 바뀌었죠. 자녀들 때문에 BTS(방탄소년단)에 대해 알았다가 그룹이 추구하는 건전한 가치를 보고 팬이 되는 경우도 많아요.”

박 전 대사는 지난 G7 정상회담에서도 선진국 반열의 입구에 선 한국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과거 국제사회는 ‘한국’하면 안보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던 게 많았어요. 영국 언론과도 인터뷰를 해보면 주로 북한 문제, 핵확산 이런 얘기를 주로 했는데, 어느 순간 K팝과 기후변화, 개발원조 등 글로벌 현안에 대한 한국의 시각을 궁금해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느꼈죠. ‘아, 이제 우리나라는 적극적인 글로벌 행위자로서 선진국 문턱에 서 있구나.’”

한국에 대한 G7 회원국들의 기대도 높았다.

“회원국들은 한국에 기후변화나 국제법에 기반한 민주질서 등에 적극 동참해주기를 기대했어요. 한국처럼 석탄발전 의존도가 높은데 탄소중립에 기여하겠다고 적극 나선 경우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성장해 개도국들에게 모범이 되는 경우도 드물거든요. 한국 자체가 국제 규범과 질서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어요.”

한국이 선진국을 향한 문턱을 넘어 국제질서의 주도적인 행위자로 나서려면 앞으로 어떤 변화들이 추가적으로 이뤄져야 할까. 박 전 대사는 가장 먼저 ‘가치 외교’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박 전 대사는 “국제사회의 규범은 마련된(established)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발전해(evolve) 나가는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우리의 시각과 목소리, 그리고 비전을 넣어 국제 규범을 짜는 데에 참여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 같아요. 이 시대에 발 맞춰 나아갈 수 있도록 잘 준비해야 하는, 그런 중요한 시기에 있다고 생각해요”고 했다.

본래 역사학자가 꿈이었던 박 전 대사는 국제질서와 주변 외교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는 한국의 지정학적 특성을 들여다보면서 외교관의 꿈을 키우게 됐다.

“역사를 만드는 데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어요. 공부를 하면서 한국은 외교 현장이 역사를 만드는 데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외교관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실제 지난 36년 간 직업 외교관으로 임하면서 박 전 대사는 한국의 글로벌 위상이 한 단계 도약하는 현장을 직접 목격하거나 지휘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박 전 대사는 청와대 비서실에서 사상 첫 남북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현장을 지켜봤다.

한국 현대 외교사의 주요 현장에 참가해온 한 사람으로서 박 전 대사는 국민 개개인의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는 데에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글로벌 무대에서 이제는 로컬 무대로 가서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국제역량을 높이는 데에 기여하고 싶어요. 지역의 세계화(Globalization)이랄까요. 우리 국민 개개인의 역량과 열정은 차고 넘치지만, 한국이 왜 국제 이슈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국제화해야 하는지 그 필요성에 대한 동기부여는 전반적으로 부족한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우리 국가 전체의 브랜드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키워서 이를 복합적인 우리의 외교력으로 활용하려면 지역의 세계화에 힘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 전 대사는 김경임 전 튀니지 대사(외시 12회), 백지아 제네바 대사(18회)에 이은 세 번째 여성 외시 합격자다. 초기 여성 외교관이 외교부 전체에서 세 명밖에 없다보니 웃지 못할 일화도 많았다.

“처음 전체 업무시간의 3분의 1은 제가 담당 외교관이라고 인식시키는 데에 쓴 것 같아요. 담당 사무관을 찾길래 제가 담당자라고 했더니 ‘아가씨 말고...남자 사무관 바꿔주세요!’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박 전 대사는 남성중심적인 외교부 조직문화에서 당당히 영국대사까지 오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인내하며 고쳐나가면 개선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말한다.

“이제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요. 본래 문화라는 게 서서히 바꿔나가는 거지, 내가 기분 나쁘다고 당장 오늘 바꿀 순 없잖아요. 천천히 바꿔나가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과정을 즐기면서 오늘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신대원·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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