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스포츠팀=이강래 기자] 미국과 함께 세계무대를 양분했던 한국여자골프의 지배력이 서서히 약해지고 있다. 22일 끝난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AIG여자오픈이 안나 노퀴스트(스웨덴)의 우승으로 막을 내리면서 한국은 11년 만에 메이저 무관에 그쳤다. 1998년 박세리의 메이저 연속 우승으로 시작된 한국여자골프의 강세가 23년 만에 힘을 잃어가는 느낌이다. 한국여자골프의 하락세는 코로나19 펜데믹과 무관치 않다. 많은 연습량으로 기량을 유지하던 한국선수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여러 면에서 위축됐다. 동계훈련도 약해졌고 국제 이동까지 제한되는 바람에 실전감각도 떨어졌다. 한국선수들의 노쇠화도 약세의 배경중 하나다. 지은희와 박인비,최나연, 김인경, 유소연, 양희영, 김세영 등 주력선수들이 20대 후반, 또는 30대에 접어들면서 체력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국내 투어인 KLPGA투어의 안정적인 발전으로 유망주들의 해외진출 열기가 식은 것도 또 다른 약세의 배경이다. 한국에서도 충분히 부와 명예를 쌓을 수 있는데 굳이 힘들게 생소한 미국 땅에서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젊은 피가 계속 수혈되어야 하는데 최근 들어 최혜진 등 해외투어에 도전해야 할 대형선수들이 해외무대 도전을 미루고 있다. 탄탄한 자국 투어 중심으로 움직이는 일본여자선수들과 비슷한 길을 걷는 느낌이다. 한국의 자리를 대신하려는 나라는 태국이다. 한국여자골프의 성공을 벤치마킹하며 집중 투자에 나선 지 15년 만에 태국여자골프는 세계무대의 중앙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태국은 올시즌 21개 대회를 치른 현재 4승을 합작해 미국(7승)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우승을 기록중이다. 한국은 메이저 대회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3승을 합작했다.태국은 2006년 자국에서 혼다 LPGA 타일랜드를 개최한 이래 여자골프의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다. 올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했던 패티 타바타나킷은 골프 다이제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혼다 LPGA 타일랜드가 해를 거듭하면서 태국 여자골프에 엄청난 영향을 가져다줬다”며 “그 대회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국에 생산 공장이 있는 일본의 자동차 메이커인 혼다는 태국 여자선수 육성을 위해 혼다 LPGA 타일랜드에 로컬 유망주들을 지속적으로 초청출전시켰다. 그 안에는 포나농 파트롬과 재스민 스완나푸라, 에리야-모리야 주타누간, 타바타나킷이 포함됐다. 이들은 모두 LPGA투어에 진출했으며 올해 태국이 거둔 4승을 합작했다.혼다 측은 또한 대회 기간중 LPGA투어 선수들이 참여하는 골프 클리닉을 지속적으로 개최하며 태국 여자 주니어 선수들에게 고급골프를 가르쳤다. 아울러 프로암 파티를 통해 LPGA투어의 생활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도록 했다. 2012년 골프 클리닉에 참여한 타바타나킷은 프로암 파티에서 폴라 크리머, 크리스티나 김을 만나 대화하며 LPGA투어 진출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태국에서 박세리의 역할을 한 선수는 에리야 주타누간이다. 그녀는 2013년 혼다 LPGA 타일랜드에 초청출전해 우승을 눈앞에 뒀으나 마지막 홀에서 트리플 보기를 범해 박인비에게 우승컵을 헌납한 아픔이 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2016년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태국인으론 최초로 메이저 우승에 성공하며 수많은 ‘주타누간 키즈’를 탄생시켰다. 주타누간은 우승 인터뷰에서 “이번 우승으로 태국의 많은 주니어 골퍼들에게 영감을 주길 희망한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주타누간의 메이저 우승 이후 태국선수들은 5년 만에 LPGA투어에서 18승을 합작했다. 이는 한국(55승)과 미국(37승)에 이은 세 번째 최다승이다. 주타누간이 통산 12승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태국여자골프의 선수층은 한국 못지않게 두텁다. 수완나푸라와 모리야 주타누간, 타바타나킷, 아난나루카른이 골고루 우승했다. 그리고 올해 혼다 LPGA 타일랜드에서 18세의 어린 아타야 티티쿨이 에리야 주타누간에게 역전우승을 허용했으나 마지막까지 치열한 우승경쟁을 펼쳐 눈길을 모았다. 티티쿨은 올시즌 4차례 LPGA투어 경기에 출전해 모두 톱5에 들었으며 유럽여자투어에선 1승을 거뒀고 톱10에 7번이나 들어 상금랭킹 1위에 올랐다.흥미로운 점은 태국여자골프의 성장에 ‘비전54’ 골프스쿨이 있다는 점이다. 피아 닐슨과 린 매리어트가 이끄는 ‘비전54’는 스웨덴 골프 국가대표팀의 육성에서 출발했다. 18홀 모든 홀에서 버디를 기록하여 54타를 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으며 ‘여제’ 아니카 소렌스탐도 이 프로젝트의 대상이었다. 주타누간 자매는 6년전, 타바타나킷은 2년 전부터 비전54를 통해 기량을 강화하고 있으며 현재 15명의 태국선수가 비전54에서 담금질을 받고 있다.태국선수들의 활약이 커지자 태국 기업들도 LPGA투어 스폰서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2주전 열린 스코티시여자오픈의 타이틀 스폰서인 트러스트골프는 태국기업이다. 스코티시여자오픈엔 11명의 태국선수가 스폰서 초청으로 출전했다. 한국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지자 기아자동차와 하나은행, 롯데그룹, 메디힐 등 많은 한국 기업이 LPGA투어 스폰서로 나선 것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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