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넌 식당 아주머니들한테 함부로 말하지 말아라. 하대하지 말고 항상 공손하게 대해라.”
30년전, 어머니가 당신 자식을 앉혀놓고 한 당부다. 자식을 키우기 위해 남의 식당을 전전하며 허드렛일을 하던 시절, 당시 어머니는 오랫동안 하던 함바집(건설현장 식당) 일을 그만두고 대전 법원 앞 식당으로 옮겼다.
이때 하신 말씀이다. 공사판 인부들 밥을 챙겨주던 것에서 벗어나 판ㆍ검사들이 자주 들르는 식당에서 일을 하니까 그렇게 몸과 마음이 편하시더란다. 남의 집 일을 해도 신이 나신단다. “인부들이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뭘 시킬때 “아줌마, 밥 줘”, “아줌마, 물 줘”하고 꼭 반말을 했는데, 넥타이를 맨 판ㆍ검사님들은 말 하나를 해도 “아주머니, 밥 한그릇 더 주십시오”라고 하더라. 역시 넥타이한 사람은 뭐가 다르긴 다르더라.”
아마, 공사판 인부들로부터 갖은 하대를 당한 설움이 상처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당신 아들도 판ㆍ검사 만큼 출세를 했으면 하는 은근한 바람과 함께 사람은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당부가 곁들여진 말씀이었다.
당신 소망의 크기만큼 출세는 못했지만, 어머니 당부가 있은 후 여태까지 난 식당에선 하대를 한 적이 없다. 거들먹거려 본 적도 없다. 그것은 어머니가 내게 준, 소중한 좌우명이자 삶의 제1원칙이 됐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리턴’ 사건을 보면서 수십년전 어머니 가르침이 생각난 것은 왜일까.
‘땅콩 리턴’ 사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검찰은 조 전 부사장이 폭언과 폭행은 물론 증거인멸을 주도한 혐의를 잡고 이를 명확히 규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은 물론 증거인멸에 일부 임원이 가담한 흔적을 발견하면서 대한항공 전체의 모럴해저드 문제로 번질 가능성도 커 보인다.
기자는 파장의 본질을 ‘항공기 회항’으로 보지 않는다. 대한항공 부사장이라도 비행기에 탑승하면 일개 승객에 지나지 않기에 회항을 지시하는 것은 월권 내지 위법이라는 의견에 동의하지만, 국민 여론이 싸늘한 것은 이 때문만은 아니라고 본다.
여론이 냉랭한 것은 조 전 부사장의 ‘사람에 대한 태도’다. 오너의 딸로, 회사 직원을 머슴처럼 본 듯한 안하무인의 태도가 민초(民草)들을 화나게 만든 것이다.
무소불위 권력을 가진 이도, 돈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이도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자신의 하인처럼 대해선 안된다. 인간의 존엄성은 권력이나 부(富)가 태산처럼 크다고 해도 훼손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다. 사건이 처음 터졌을 때, 인간에 대한 존중 가치를 뒤늦게라도 깨닫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내놨다면 이렇게까지 파장이 커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조 전 부사장의 아버지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과도 ‘진정성’이 결여된 느낌을 줬다는 것은 아쉽다. 엘리베이터 앞에 내려와 사과문을 낭독하고, 곧장 올라가는 장면에선 딸의 잘못에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겠다는 아버지의 모습은 미흡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자식의 잘못은 아직까진 부모의 무한책임이 아닐까.
돈 없고 배움도 짧지만, 최소한 자식에게 ‘사람답게 살라’는 가르침에 있어선 내 어머니가 훨씬 우위에 있음을 확인했다는 게 어쩌면 위안거리다.
김영상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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