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관광업으로 국가 경제가 풍족해지고 기업들이 돈을 버는 구조 속에서 정작 그 나라 국민과 지역 주민들은 소외당하는 사례가 눈에 띈다. 남유럽의 그리스에서는 해변에 앉을 권리를 두고 시민들이 들고 일어섰다. 돈 많은 관광객을 위한 값비싼 일광욕 의자들이 해변을 뒤덮자 주민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진 것이 발단이 됐다. 일본은 관광객들의 소비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깜짝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대다수 일본인의 생활수준은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드러났다.
1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최근 관광 극성수기에 들어선 그리스 파로스섬의 모나스티리 해변에는 빨간 파라솔이 달린 라운지 의자가 모래사장을 뒤덮고 있다. 그늘 아래서 반짝이는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이 의자의 사용료는 70유로(10만원)가 넘는다. 현지 주민들은 이 돈을 낼 수 없거나, 내고 싶지 않아서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뒤편 나무 그늘을 찾아 앉아야 한다.
이 지역 주민인 니콜라스 스테파누(70)는 NYT에 “어떤 때는 해변을 저 의자들이 100퍼센트 덮어서 (의자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을 사실상 쫓아낸다”며 “주민들은 우리가 섬에서 밀려나고 있다고 느낀다”고 밝혔다.
그리스 해변은 기본적으로 공공에 개방되어 있지만 지방 당국이 수익 사업 명목으로 인근 레스토랑 및 호텔에 해변의 일부를 임대할 수 있다. 다만 해변 면적의 50% 넘겨서는 안된다고 법에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관광객이 평소의 10배 이상 몰리는 여름 극성수기 시즌에 업체들은 이를 무시하고 해변 전체에 의자를 설치하고 있다. 당국이 나와 단속해도 그때만 잠시 일광욕 의자를 치울 뿐 계속해서 불법 영업을 이어가는 행태가 반복됐다.
이에 최근 몇 주 동안 파로스섬 주민 수백명이 “우리의 해변을 돌려달라”는 현수막을 들고 모래사장을 따라 걷는 시위를 벌였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파된 주민 운동은 그리스 전역으로 확산돼 북쪽 코르푸섬에서부터 남쪽 크레타섬까지 ‘비치타월운동’을 촉발했다.
시민들이 끊임없이 항의 끝에 불법영업을 일삼은 업주 세 명이 체포되고 정부가 보다 투명한 해변 관리를 위해 법 개정을 약속했다.
분석가들은 이 운동의 의의에 주목한다. 그리스인들이 기업 등 이익집단의 착취에 억눌린 좌절감, 오랜 기본권 박탈에 참았던 분노를 터뜨린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가난한 상황에서 해변을 점령한 일광욕 의자들이 ‘낙타의 등을 부러뜨린 지푸라기(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가 됐다는 것이다.
세라핌 세페리아데스 판테온대학 정치역사학교수는 “폭리 행위가 만연한 나라에서 시민들이 공적 공간을 되찾기 위해 일어섰다”고 말했다.
그리스 뿐만 아니라 최근 엔저(円低)로 관광 특수를 맞고 있는 일본에서도 부유한 외국인을 타겟으로 한 초호화 리조트, 호텔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지만 정작 일본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더 어려워진 것으로 나타났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일본 관광객 수입의 10% 이상이 극소수의 슈퍼리치들로부터 나온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이들이 더 자주 방문하도록 장려하기를 원한다. 일본 정부는 외국 민간 항공기가 착륙하기 전에 10일 전에 통지해야 하는 요건을 3일로 단축시켰다. 또 항구에 도착하는 외국 국적 프라이빗 요트에 적용되는 규칙도 완화하기로 했다.
기업들도 지갑을 닫은 일본 국민보다는 씀씀이가 큰 외국인을 주요 고객으로 본다. 지난 4월 도쿄에 명품 브랜드 불가리가 선보인 불가리 호텔은 가장 저렴한 1박 요금이 25만엔(약 230만원)으로 일본 신입사원 평균 월급(약 200만원)보다도 높다. 불가리 호텔 외에도 도쿄 등 대도시 도심 최상층에 럭셔리 호텔들이 속속 문을 열고 있지만 역시 평범한 일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실제로 외국인 관광객의 통 큰 소비 덕에 일본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 대비 1.5% 증가, 연율 환산으로는 6% 성장률을 기록했다. 당국은 수출 호조에 따른 것으로 분석한다.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는 통계상 수출로 잡힌다.
하지만 내수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개인 소비가 전분기 대비 0.5% 줄어들었는데 물가 상승에 따른 실질임금 감소 등의 영향으로 식품과 가전 소비가 위축된 탓이다. 블룸버그는 일본의 2분기 경제 성장에 대해 “수출 급증이 기업 투자와 민간소비의 부진을 상쇄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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