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최남주 기자] 9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삼성그룹 사장단 신년 만찬 행사가 있었습니다. 사장단 신년 만찬은 재계 대통령으로 통하는 이건희 회장의 생일인 1월 9일에 맞춰 열리는 삼성그룹의 신년 하례 행사입니다. 이 회장의 73세 생일 축하연을 겸하는 이번 만찬엔 제20회 자랑스런 삼성인상 수상자 20명과 부사장급 이상 사장단 등 40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이날 만찬에서 정작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건배주로 깜짝 등장한 ‘백련 맑은 술’입니다. 1병에 1만원 안팎하는 이술은 충남 당진의 신평 양조장에서 80년간 3대를 이어 빚은 전통 약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백련맑은술’은 이명박 대통령 시절인 지난 2009년 8월 청와대 행사에서 건배주로 사용했던 술이지요.
이 술은 2012년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살균 막걸리부문 대상을 수상한데 이어 지난해 세계 3대 주류품평회중 하나인 ‘영국주류품평회’에서 동메달을 수상하는 등 좋은 전통약주지요. 삼성그룹 신년 만찬행사에 전통주가 건배주로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물론 많은 참석자들이 건배주로 나온 전통주를 보고 많이 놀랐다고 합니다.
사실 지난해까지 삼성그룹 만찬회엔 의례껏 ‘돔 페리뇽 바이 데이비드 린치 2003년산’과 ‘케이머스 카베르네 소비뇽 스페셜 셀렉션 2009년산’ 등 20만원 이상의 고가 와인을 건배주로 사용했습니다. 이 때문에 ‘돔 페리뇽 바이 데이비드 린치 2003년산’과 ‘케이머스 카베르네 소비뇽 스페셜 셀렉션 2009년산’은 ‘이건희 와인’으로 통했죠.
그러나 이날 만찬에서 ‘백련 맑은 술’이 등장하면서 삼성의 ’신년 만찬회 건배주=이건희 와인‘ 공식이 깨졌습니다. 왜 삼성그룹 신년 만찬회 건배주가 와인에서 전통주로 바뀌었을까요. 경기불황, 신경영 20년, 새출발, 한류, 글로벌 등 여러가지 의미를 찾아보지만 전통약주를 건배주로 선택한 이유를 알 수 있는 적당한 단어가 좀처럼 떠오르지 않습니다. 2014년 신년 만찬 건배주로 전통주를 선택한 이 회장님의 속뜻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사실 십수년전 와인이 대중화 되면서 와인은 재벌기업 만찬회의 단골 건배주로 자리잡았습니다. 20만~30만원 안팎의 고급와인이 주로 건배주로 사용됐습니다. 지난해 초 전경련 회장단 신년회에도 ‘샤또 마고’, ‘샤또 팔머’, ‘샤또 브랑 깡뜨냑’ 등이 건배주였습니다. 이번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전통주 건배가 기업들의 건배주 변천사에 많은 변화를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재벌기업 회장님들과 달리 최고 통치권자의 건배주는 어떨까요. 20여년전까지 대통령이 주재하는 만찬행사엔 대부분 와인이 사용됐으나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와인보단 전통주가 건배주로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때부터 전통주=건배주라는 공식이 성립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엔 국내 산업의 발전을 기대하는 통수권자의 강한 의지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외환위기 직후 통수권자가 된 김대중 대통령은 아시아유럽 정상회의의 개막 축하연에서 금산 인삼주를 건배주로 사용한 뒤 각종 행사에서 전통약주로 건배를 많이 했습니다. 서민대통령 이미지가 짙은 고 노무현 대통령도 천년약속 복분자 등을 건배주로 즐겨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등도 전통술로 건배주를 썼습니다. 특히 경북 청도에서 만든 감와인은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모두 취임 축하 만찬의 건배주였습니다. 감와인은 유명세를 타면서 그 뒤 열린 반기문 UN사무총장의 코리아 스파클링 인 뉴욕 행사와 APEC 정상회담, G20 재무장관회의 등 국제적 행사에 어김없이 단골 건배주 입지를 굳혔다고 합니다.
남북 정상이 만나는 자리는 어땠을까요. 지난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난 6.15 남북정상회담 때 건배했던 술은 김일성이 즐겨 마시던 들쭉술(북한)과 문배주(남한)였습니다. 또 2007년 고 노무현 대통령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열기 위해 평양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러 갈때도 전통약주인 천년약속을 건배주로 준비해 갔습니다.
’천년약속‘은 그뒤 APEC, 국가올림픽위원회총연합회(ANOC), 세계장애인역도대회, 제14차 국제노동기구(ILO) 아태 총회, 한일관광 교류의 밤, 한일정상회담, 제15차 세계한상대회 등 행사 때마다 단골 건배주가 됐습니다. 그동안 ‘재벌총수 건배주=와인‘, ’대통령 건배주=전통주’가 공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전통주 건배를 계기로 재벌기업들이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기 위해 건배주를 바꾸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각 기업들의 신년 만찬 행사가 줄을 이을 것입니다. 과연 2014년을 맞은 재벌 총수들이 와인으로 건배할지 전통주로 건배할지 지켜볼 일입니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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