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지혜 기자] “딸아 천국으로 잘 가렴... 아빠는 지옥에서 죄 값을 치를게”

11억 원대의 아파트를 소유한 40대 가장이 가계파탄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미성년자인 두 딸(13ㆍ8세)과 아내를 살해한 후 남긴 유서다.

이 가장은 가족을 살해한 후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도주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한때 남부럽지 않게 살던 한 가족의 가장은 세상에 홀로 남아 죄 값을 치르게 됐지만 아버지가 실직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잠결에 살해된 어린 두 딸의 영혼은 누구도 달래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7일 서울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세 모녀 살해 용의자로 체포된 강모(48) 씨는 실직 후 수입이 급감하면서 가족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이기지 못해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에 따르면 명문 사립대를 졸업하고 외국계 IT 회사에 다니던 강 씨는 지난 2012년 실직 후 소유한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생계를 꾸렸다.

강 씨는 매 달 400만 원 씩을 아내에게 생활비로 주고 나머지 돈으로 주식투자를 하다가 2억7000만 원 가량을 잃었다.

최근 1년 여간은 갈 곳이 없어 고시원에 다니며 주식을 했으나 강 씨가 실직한 사실은 아내만 알고 자녀들은 몰랐다.

강 씨는 경찰 조사에서 “가족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라고 살해에 이르게 된 동기를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가족 동반자살’은 가족중심주의가 강한 한국, 일본 등에서만 있는 표현이라며 ‘자녀 살해 후 자살’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해 2월 ‘송파 세모녀사건’ 때까지는 가난으로 인한 일가족 동반자살의 원인을 빈곤층 지원 제도 등 사회 안전망 부재에서 찾는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 문제 해결을 위해 ‘세모녀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대두됐다.

하지만 지난 해 11월 인천에서 빌딩을 15채 소유한 부모가 과도한 부동산 유지로 인한 빚을 감당하지 못해 자녀를 살해하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가계 파탄을 ‘가족 살해 후 자살’로 해결하는 잘못된 가족주의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설령 개인이 자신의 목숨을 끊는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부모가 자녀를 죽일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이현정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은 “금융위기가 있었던 1990년대 중반 이후 급격한 사회경제적 구조변동이 양산한 경제적 빈곤집단에서 ‘자녀 살해 후 부모자살’이라는 극단적 사고가 자주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처럼 사회보장제도가 개선되더라도 자녀양육이 부모의 능력과 자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문화에서는 부모의 죽음이 곧 자녀의 불투명한 미래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며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자녀를 홀로 남겨놓는 것을 무책임한 행위로 인식해 이런 선택을 한다”고 분석했다.

고급 아파트를 소유한 중산층마저도 빚더미에 올라 극단적 선택을 하게 하는 상황에 대한 제도개선 요구도 제기됐다.

부모가 자녀를 소유물로 생각하는 것도 가족 살해의 한 원인이지만, 이웃과 사회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는 점도 유사한 사건이 되풀이 되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자녀들이 제대로 살아갈 수 없으리라 예측하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끊을 때 자녀를 살해하는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정부가 가난하거나 가난에 빠질 위험이 있는 이들에 대한 복지를 확대하지 않아 중산층이 빚더미에 오르거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극단적 사고가 늘어나고 있다”며 “가난이 죽음보다 두려운 일이 되는 병리적 사회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한다”고 말했다.